금융감독원이 삼성생명 등 생명보험사가 고객들에게 1조원에 달하는 즉시연금 미지급분을 일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권에선 금감원이 일괄구제 결정을 내린 근거로 삼은 산하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조정 결과 및 방식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현행 분조위 진행 방식으로는 사전에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아 자칫 한 쪽에 편향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금융권에서 제기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통상 금융 민원을 처리하는 분조위를 개최하기 일주일 전에서야 분쟁조정 대상으로 올라온 금융사들에게 의견 통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통보를 받고 나서야 금융사들은 본인들이 분쟁조정 대상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게 된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금감원은 일주일 전에 분조위 개최를 통보하면서 늦어도 이틀 내로 의견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사들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서 방어권 보장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금감원이 수개월간 내부 검토 및 외부 전문가 자문 등을 수행한 후 상정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분조위 심의 때 금융사가 참석해 입장을 설명할 수 없는 회의 진행 방식도 한 쪽에 편향된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분조위가 금감원과 금융사 입장을 균형있게 심사하기 어렵다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금감원의 제재심의는 올해부터 금감원 검사국과 제재 대상 금융사 양측이 모두 참여하는 대심제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분조위는 여전히 대심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삼성생명을 대상으로 제기된 민원을 심사한 금감원 분조위에서도 삼성측은 참석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결과만 통보받았다. 이렇다보니 분조위 결정에 심각한 법리상 문제가 있거나 오류가 있어도 재심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는 “다른 분야에 비해 보험은 계리, 상품구조, 약관해석 등 전문적인 사안이 많다”며 “충분한 사전 검토를 통해 논의를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개최 직전 안건을 검토할 경우 잘못된 결정을 내릴 확률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분조위는 금융 분야에 해박한 전문가들이 심도있는 토론을 거쳐 조정 결과를 결정한다”고 반박했다.
금융권에선 분조위 조정 결정이 나더라도 금융사들이 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아 지급 여부를 최종 결정할 수 있는 등 추가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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