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편법·관행이 지속되면 나중에는 그게 제도이자 권리인 줄 안다. 대한민국 국회가 그런 식이다. 국회법에 분명히 2년으로 명시된 상임위원장 임기를 의원들이 1년씩 쪼개 맡는 게 대표적이다. 그제 구성된 20대 후반기 국회의 18개 상임위원회 중 위원장 임기를 쪼갠 곳이 8곳에 이른다. 전반기 7곳보다 한 곳 더 늘었다. 18대 국회부터 고개를 든 비정상이 어느새 정상으로 둔갑해버렸다.
편법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핵심인 기획재정위원장에 중진 두 명을 배치했다. 인기 없는 여성가족위원회를 선호도 높은 행정안전위원회와 엮어, 두 의원이 1년씩 교대로 위원장을 맡게 했다. 자유한국당도 자당 몫인 7개 상임위 중 5곳에 두 명씩 위원장을 배치했다. ‘알짜’라는 예산결산특위는 6개월짜리 위원장까지 등장했다. 내년 초 당권 도전을 염두에 둔 선임자가 먼저 6개월을 맡고, 후임자가 잔여 임기를 채울 것이라고 한다. 다른 몇몇 상임위도 후임자가 미정일 뿐 임기 쪼개기가 더 있을 것이란 소리도 들린다.
여야가 상임위원장 자리를 나눠먹기 대상으로 여기는데 전문가적 식견이 고려됐을 리 만무하다. 선수(選數)와 나이, 정치적 ‘끗발’이 기준일 뿐 해당 분야 경력과 전문성은 한참 뒷전이다. 그러니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일해본 경험도 없이 위원장 자리를 꿰찬 경우가 6곳이나 된다. 토목기사에게 정밀 외과수술을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의원들의 활동공간이 국회인데 역량이 부족하니 행정부 견제는커녕 판판이 깨지기 일쑤다. 기껏해야 장·차관들에게 목청 높이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 의원들이 ‘청와대의 만기친람’을 비난하지만, 뭘 알아야 제대로 따질 게 아닌가. 그러면서 국회가 공직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전문성 부족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미국에선 다수당이 해당 상임위원회 경력이 가장 오래된 의원을 위원장으로 추천한다. 상원 상임위원장은 임기가 6년으로, 장관 못지않은 전문성을 발휘한다. 샘 넌 전 상원 군사위원장 같은 인물이 나오는 배경이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하원의 별도기구인 ‘위원회 배정위원회’에서 각 당이 추천한 상임위원장·위원 후보의 전문성을 따져 수용 및 거부는 물론 해임도 한다. 한국 국회처럼 원(院) 구성 밀실협상에다 생판 경험도 없는 ‘초짜’ 상임위원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회의 주재, 의사일정 결정 등 의정활동의 핵심 보직이다. 그만큼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요구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오히려 경력 관리, 지역 현안 해결과 예산 확보, 특수활동비 등 잿밥에 혈안인 듯하다. 여야가 이제는 서슴없이 임기를 쪼개면서 국민에게 계면쩍은 표정도, 사과도 없다. 이런 것을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