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약초와 독초는 한 뿌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똑같은 풀이지만 쓰임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투구꽃의 덩이뿌리인 부자(附子)는 조선시대 한약재로 활용됐지만, 독성이 너무 강해 사약으로도 쓰였다. 독의 양에 따라 삶과 죽음이 왔다갔다 했다.
‘독성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위스 의학자 파라켈수스는 500년 전 “어떤 물질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여부는 용량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를 실험 과정에서 확인하고 ‘호르메시스(hormesis·자극)’라는 용어로 개념화한 것은 독일 약리학자 휴고 슐츠다. 그는 1888년에 소량의 독성이 효모의 성장을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20세기 들어서는 미국 학자 에드워드 캘러브레스가 페퍼민트 식물 연구에서 이런 효과를 입증했다. 페퍼민트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포스폰을 투여했더니 성장이 억제되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식물보다 40%나 더 크고 잎도 무성해졌다.
‘호르메시스 효과’는 건강 분야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적은 양의 독성이 인체에 유익하다는 연구 결과도 잇따르고 있다. 마늘에 함유된 알리신과 카레에 들어 있는 커큐민, 블루베리 속의 폴리페놀 등은 독소인데도 몸속 세포를 자극하면서 면역력을 키운다. 천연독소인 보톨리눔을 미용과 치료에 활용하는 보톡스도 호르메시스 효과의 한 예다.
최근에는 복어의 독을 이용한 진통제와 치료약 개발이 한창이다. 일제 치하 의친왕이 독성 강한 비상(砒霜)을 조금씩 먹으며 독살 위험에 대비했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알코올 또한 적정량일 때는 몸에 이롭다. 분당서울대병원 배희준 교수팀이 미국신경학회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하루 3~4잔의 소주가 뇌졸중 예방효과를 46%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을 유발한다는 방사선은 한편에서 간암, 유방암 등의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현미와 통곡물을 둘러싼 논쟁도 흥미롭다. 어떤 학자는 식물의 껍질 속에 있는 자기방어용 화학물질 ‘렉틴’이 위장에 염증을 일으키고 소화를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독일 진화생물학자 리하르트 프리베는 “렉틴의 염증유발 요인보다 항암, 면역증강 등 긍정적인 역할이 크고 몸속의 독성물질을 배출하는 효과까지 있다”며 통곡물을 옹호한다.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맞닥뜨리는 스트레스도 심신을 이롭게 해 준다. 적절한 압박과 자극이 생체의 재생 메커니즘을 작동시켜 세포에 활력을 준다고 한다. 물론 중요한 것은 ‘최적의 용량’이다. 폭염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치솟더라도 ‘적절한 자극’을 즐긴다면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된다. 니체도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