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평등하고 안정된 가정… 家母長제 부족에서 찾다

입력 2018-07-12 18:17
어머니의 나라

추와이홍 지음 / 이민경 옮김
흐름출판 / 312쪽│1만3800원


[ 김희경 기자 ] 중국 서남부 윈난성과 쓰촨성 경계에 있는 루구호. 이 호수 주변에는 2000년 전부터 삶의 터전을 일군 중국 소수민족 모쒀족이 살고 있다. 모쒀족은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모계사회를 유지하며 ‘가모장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모계사회는 여성의 핏줄을 따라 가족과 친족을 정하는 것을 이르고, 가모장제는 가족 내에서 여성을 가장으로 삼는 제도를 뜻한다.

《어머니의 나라》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모쒀족의 삶을 통해 사랑의 자유를 실현하면서도 안정된 가족의 모습을 제시한다. 저자는 중국계 싱가포르인 변호사 추와이홍이다. 로펌에서 일하다 2006년 조기 은퇴한 뒤 중국 전역을 여행하던 중 모쒀족 마을에 집을 짓고 6년 넘게 생활했다.

모쒀족 여성은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집에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 그리고 그 방에서 마음대로 사랑할 자유를 누린다. 모쒀족 말로 연인을 아샤오라고 하는데, 남성 아샤오는 여성과 밤을 보낸 뒤 아침이면 어머니와 함께 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결혼은 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연애만 한다. 한 명이든, 계속 바뀌든, 동시에 여러 명을 만나든 상관이 없다.

임신하면 아이는 오로지 어머니의 자식으로 인정받고 혈통은 모계로 이어진다. 가모장인 할머니, 할머니의 딸과 아들, 딸이 낳은 손자, 손녀들로 이뤄진(아들과 여자친구 사이에 생긴 아이들은 그 여자친구의 가계에 속하므로) 모계 대가족이 모쒀족 가정의 기본 단위다. 이 배경엔 ‘거무’라는 여신을 섬기는 모쒀족의 종교가 있다. 티베트 불교에 토속신앙이 결합한 형태다. 여기서 비롯된 생활방식은 중국은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남성이 억압받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모쒀족 사회는 평등을 추구한다. 할머니의 남자 형제와 어머니의 남자 형제는 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만큼 존중받는다. 남성은 경제력으로 평가받지 않고, 혼자 부양의 책임을 떠맡지도 않는다. 여성의 집에 들어가 같이 가사와 육아 부담을 진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방식인 것이다.

연애 상대가 바뀔 때마다 가족이 깨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이 오히려 적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부모의 결별로 인해 아이들에게 상처가 남는 일은 드물다. 모든 아이가 태어난 모계 가정에서 죽을 때까지 안정된 형태로 생활한다. 아이들은 이모를 엄마라고 부르며 이모들도 조카를 자식으로 여긴다. 가부장제 사회의 아이들과는 달리 어머니의 남자친구가 몇 명이든, 얼마나 자주 바뀌든 상관없이 언제까지나 어머니와 어머니 가족에 둘러싸여 넘치는 보살핌을 받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모쒀족과 함께 지내며 인류의 절반을 억압하고도 이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제를 채택한 대다수 사회에 필요한 교훈을 얻었다. 모계제와 가모장제를 채택한 모쒀 사회가 가진 원칙은 우리 모두가 꿈꿔 볼 만한, 더 평등하고 더 나은 신세계를 마음속에 그릴 수 있게 해준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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