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번지는 美·中 통상전쟁
글로벌경기 악화 우려에 회사채 투자 수요 위축
금리 껑충 뛰며 美국채와 격차 갈수록 벌어져
기업 달러 조달 '비상'…고금리 발행 악순환도
[ 김진성 기자 ]
▶마켓인사이트 7월12일 오후 3시45분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파장이 해외 자금조달에 나선 국내 기업들을 덮쳤다. 경제가 출렁일 것이란 불안에 한국 등 신흥국 회사채 수요가 얼어붙으면서 교보생명 한국전력 현대해상 등 국내 기업이 해외 채권 발행 계획을 줄줄이 연기하고 있다.
1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이달 해외 영구채(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준비하던 교보생명(10억달러)과 현대해상(5억달러)이 발행 시기를 미루기로 결정했다. 비슷한 시기 5억달러 규모 후순위채를 찍을 예정이었던 동양생명도 발행을 연기했다. 같은 금액의 해외채권 발행을 계획한 한국전력과 기업은행도 조달 시기를 늦췄다.
이들이 채권 발행을 보류한 것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어서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서로 연달아 ‘관세 폭탄’을 날리는 등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글로벌 경기 회복세가 꺾일 것이란 불안에 투자자들이 적극적인 베팅을 꺼리고 있다.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미국 국채 등 초우량 채권을 집중적으로 담으면서 신용도가 떨어지는 이머징(신흥국) 국가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위축됐다는 평가다.
신흥국 회사채와 미국 국채 간 금리 격차(스프레드)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1일 1.376%포인트였던 아시아 신흥국 투자적격등급(BBB-~AAA) 회사채 평균 스프레드는 지난 11일 1.475%포인트 까지 상승했다. 하이일드(신용등급 BB 이하) 회사채 스프레드는 같은 기간 4.601% 포인트에서 5.817%포인트로 뛰었다.
국내 기업들의 이자 비용도 치솟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13일 발행 예정인 5억달러어치 해외 채권 금리는 연 4.125%로 동종업계 기업인 GS칼텍스가 지난달 27일 찍은 글로벌본드 금리(연 3.980%)보다 0.145%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미국 국채와의 금리 격차도 SK이노베이션(1.4%포인트)이 GS칼텍스(1.2%포인트)보다 컸다.
IB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 채권의 핵심 투자자인 아시아 기관투자가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투자 수요를 모으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채권 발행을 위해 줄줄이 대기 중이던 기업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채권 발행 일정을 연기한 보험사들 외에도 신한금융지주 포스코 한국동서발전 등이 이달 해외에서 달러화 채권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상반기 환율방어를 위해 국내 금융회사 및 기업에 해외 채권 발행을 자제해달라고 권고하면서 적잖은 기업들의 발행 일정이 7~8월로 몰렸다.
한 증권사 채권발행 담당임원은 “채권 금리가 높게 형성돼도 발행을 강행하는 기업이 나타날 경우 그 이후 해외 달러화채권 발행에 나서는 다른 기업의 채권 금리도 높게 결정될 수 있다”며 “그렇다고 발행을 미루기엔 주요국 통화긴축 정책에 따른 채권 금리 상승 가능성이 부담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채권 발행 여부와 시기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국내 보험사들이 그동안 찍었던 영구채 금리가 유독 유통시장에서 크게 뛰고 있어서다. 지난 10일 해외 채권시장에서 거래된 교보생명 영구채 유통금리는 연 5.93%로 작년 7월 발행 당시보다 2%포인트가량 뛰었다. 흥국생명(연 8.10%) 한화생명(연 6.67%) KDB생명(연 8.99%)의 영구채 유통금리도 발행 이후 크게 올랐다.
해외 기관들이 더 높은 금리를 주는 보험사 영구채로 계속 갈아타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들 기관은 기존에 담은 영구채가 금리 상승에 따른 채권값 하락으로 손실이 나자 영구채나 후순위채 발행에 나선 한국 보험사에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다. 고금리 영구채가 발행되면 이를 사들이고 보유 중인 영구채는 싸게 파는 현상이 되풀이되면서 다른 한국 채권보다도 금리가 큰 폭으로 뛰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국내 보험사들이 3년 후 새 보험업 회계처리기준(IFRS17) 도입에 대비해 자산 건전성 개선 차원에서 줄줄이 해외 시장에서 영구채나 후순위채를 찍으려 한다는 것을 해외 기관들이 알고 있다”며 “발행 후 채권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에 금리를 높이라는 요구가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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