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 고수 3인이 본 韓증시 "남북 관계 개선 기회지만 '수출 쏠림' 걱정"

입력 2018-07-04 19:40

한국의 대표 가치투자 펀드매니저로 손꼽히는 강방천 에셋플러스 회장,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4일 남북 관계 개선이 한국 증시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최근 국내 증시 하락을 이끈 미·중 무역분쟁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고 세계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 중심 산업구조의 한국 경제와 국내 증시에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고 전망했다.

가치투자 펀드매니저 3인은 이날 서울 봉은사로 인터컨티넨탈 서울에서 열린 '우리 함께 부자 돼요; 2018 에셋플러스 리치투게더 펀드 10주년 운용보고회'에서 대담을 진행하고 "향후 남북 관계 개선이 국내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4년 전 통일펀드를 선보인 신영자산운용의 허 대표는 "남북한 관계 개선이 한국의 가장 큰 문제인 인구감소, 주요 산업의 경쟁력 감소 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지만 관건은 시간"이라며 "통일펀드 뿐 아니라 다른 펀드 포트폴리오에도 이를 염두에 둔 종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가장 큰 경쟁력을 보유한 반도체, 정보기술(IT), 바이오 산업 대표주의 경우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수혜를 입으면서 주가도 상승할 것으로 관측했다.

허 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할인) 요인 중 안보 리스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통일 시대를 맞게 된다면) 코스피지수가 4000선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국내 증시가 10% 가까이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외국인 투자자조차 이를 믿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시간은 걸리겠지만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남북 관계 개선으로 북한이 기반시설과 생산기지, 소비시장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고 특히 기반시설과 소비시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투자한다면 인프라, 특히 에너지 관련 기업과 소비재 기업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 역시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며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했다.

다만 투자 종목군과 관련해서는 "북한 경제 상황에 대해 명확한 청사진이 전해지지 않은 만큼 실수혜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본다"고 당부했다. 그는 "현 시점에서 예측 가능한 수혜 기업은 결국 공기업인데,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덧붙였다.

연중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국내 증시에 대해서는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발생했지만 상승 모멘텀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부담 요인으로 꼽았다. 미·중 무역분쟁이 파국을 맞을 가능성은 낮지만 해결에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고 수출국인 한국의 경우 불확실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7.30포인트(0.32%) 내린 2265.46으로 장을 마감해 2260선으로 후퇴했다.

허 대표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의 70% 수준까지 성장한 상황에서 미중 무역분쟁은 남북 관계와 같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과거 무역전쟁의 끝이 경제공황으로 끝났다는 점에서 파국을 맞지 않고 서로 협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 대표 역시 "그 누구도 파국을 원치 않는 상황"이라면서도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려 하는 상황이고 전 세계 경제가 자국 보호주의로 블록화되고 있는 만큼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야 해결될 가능성이 있어 해결 수순까지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의 경우 세계 보호무역주의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허 대표는 "한국 증시가 4주 연속 하락한 원인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중미 무역분쟁이라고 사후해석하지만 사실상 한국 경제력에 대한 장기적인 의심이 불거졌기 때문"이라며 "한국에 반도체 외에는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산업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주요 산업이 중국에 밀려 무너지고 있고, 차라리 무역분쟁이라고 핑계를 대고 있을 때가 좋을 수 있다"며 "그런 핑계도 댈 수 없는 때가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싼 주가가 회복되려면 무역분쟁이 해결되던지 남북 관계 개선 등 돌파구가 생겨야 한다는 점이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도 "전 세계 경제가 자국 보호주의로 블록화되는 상황에서 내수 시장이 취약한 한국은 수출이 안되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며 "외국계 투자은행(IB)은 코리아디스카운트 요인 중 북한 리스크는 4% 정도에 불과하고 산업구조의 취약성이 가장 큰 문제라고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밸류에이션 메리트를 고려하면 가치주를 분할 매수할 만한 시점이란 의견에 무게가 실렸다.

허 대표는 "투자 환경으로 보면 주가가 싸다는 것 외에 호재를 찾을 수 없다"며 "수출환경이 좋지 않고, 실업률이 높고 금리와 유가가 상승하는 등 악재만 있고 호재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수급상 기관투자자의 '로스컷'(편입 종목 중 일정폭 가격 하락 시 자동 매도)으로 인해 최근 양호한 기업의 주가가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는 만큼 가치주를 늘릴 만 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허 대표는 "주가에 악재가 상당히 반영돼 본격적으로 가치투자에 나설 시기가 왔고, 좋은 주식을 싸게 담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면서도 "문제는 (적정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모른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역시 "매수 자금이 유입돼야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펀드의 특성이 있지만 선별적으로 꾸준히 순매수하고 있다"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 중소형 가치주 중심으로 매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행사는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대표 상품인 '코리아리치투게더 펀드' 운용 10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2008년 7월 출시한 '코리아리치투게더 펀드'는 누적수익률이 156.87%를 기록해 코스피지수 대비 102.94%포인트의 초과 성과를 냈다.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은 1999년 투자자문사인 에셋플러스투자자문으로 시작해 2008년 6월 자산운용사로 전환한 가치투자 운용사다. 자산운용업 진출 당시 투자자가 운용사를 직접 방문해 펀드에 가입하는 '펀드 직접판매' 방식을 도입해 업계에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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