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는 글에 대한 네티즌의 냉철한 의견을 공유하고 전문가와 함께 생각해보는 [와글와글]. 아이를 낳고 육아를 같이 하자던 남편의 엉뚱 논리에 속 터지는 A 씨의 사연이다.
누군가에는 고민할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는 소수의 사연들이 사실은 내 가족이나 친구가 겪고 있는 현실 일지 모른다. 다양한 일상 속 천태만상을 통해 우리 이웃들의 오늘을 들여다보자.
A씨의 남편은 자칭 개념남이다.
전업주부와 돈벌이하는 남편의 역할이 엄연히 다르지만 육아에만큼은 아빠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업주부인 A씨가 출산 전에는 대부분의 가사를 하고 남편은 쓰레기 버리는 정도의 일만 부담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남편은 "난 육아를 같이하는 개념 있는 남자야. 당신이 전업주부니까 살림은 맡아서 하더라도 육아는 나랑 같이 하면서 아이 잘 키워보자"라고 말해줬고 A씨도 이에 수긍하며 고마워했다.
하지만 막상 상황에 닥쳐보니 살림과 육아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일은 A씨가 맡아서 해야 하는 처지였다.
"여보 아이 옷 빨래한 거 건조기에 좀 넣어줘."
"그건 살림이잖아. 왜 날 시켜."
"아이 기저귀랑 물티슈 택배 온 거 정리 좀 부탁해."
"그건 살림이지."
"아이 매트랑 침대 좀 옮기자."
"그건 살림. 전업주부가 왜 집안일을 날 시키려고 해. 난 못해."
A씨는 "젖병 씻고 소독하는 것이며 아기 빨래는 그렇다 쳐. 솔직히 아기매트 아니고 우리가 쓸 거 왔어도 힘센 사람이 좀 옮겨주고 깔아주면 안 돼? 심지어 아기 물건인데도 집안일이니 시키지 말라니 너무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이에 남편은 "살림은 당신이, 난 육아를 하기로 했잖아. 아기에게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거 아니면 육아가 아니지. 내가 직장생활하면서 돈도 버는데 왜 가사까지 해야 해?"
A씨에 따르면 남편은 아기 같이 목욕시키고 가끔 분유 먹여준 게 육아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지 자기는 너무 육아를 잘 도와주고 있다고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아이 백일을 집에서 차리면서 대여한 백일상 차리는 걸 도와달라 했더니 "이건 육아가 아니잖아. 난 못 도와. 그만 들어갈게"하고 잠을 자는 남편을 대신해 A씨 혼자 무거운 식탁을 옮기고 낑낑거리며 현수막을 달기도 했다.
A씨는 "어디까지가 육아고 어디까지가 살림인 건지 도저히 모르겠으니 조언을 해달라"고 네티즌에게 도움을 구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간단히 말하면 아이가 없었으면 하지 않았을 모든 것들이 육아다"라고 간단히 정의를 내렸다. "예를 들어 일반 설거지는 살림, 아이 젖병 삶는 것은 육아"라는 것.
또 다른 네티즌들은 "이런 얘기 들으면 진짜 결혼하기 싫어진다. 요리사가 요리를 만들 때 준비된 재료로 섞고 굽고 끓여서 플레이팅만 하나? 재료 구해서 씻고 계량하고 요리한 다음 설거지에 뒷처리까지 하고 쓰레기도 버려야 되지 않나. 요리 하나만 만들어도 저 정도인데 아이를 키우는 데는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까", "저런 상황에서 자꾸 자기 입으로 가정적이다 잘하고 있다 하니 어이없다", "그냥 남편은 육아도 안 하고 싶단 얘기다. 저게 육아가 아니면 뭐가 육아인가? 그리고 육아는 돕는 게 아니라 부모면 당연히 같이 해야 하는 거라고 다시 개념 심어줘라", "전업주부의 일은 청소하기 빨래 설거지 밥 차리기 만이라고 아이 일은 전업주부의 일이 아니라고 해라" 등의 조언을 전했다.
최강현 부부행복연구원장은 "가정생활에서 가사와 육아는 부부가 원만한 분담.협업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간다"면서 "가사 육아분담에서 각자가 잘하는 분야 즉 남편은 힘쓰는 일을 중심으로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아이 목욕 시키기, 청소하기, 빨래널기 등을 전담하고 바쁠때는 구분하지 말고 서로 도와주는 배려가 부부행복의 시작이다"라고 조언했다.
이혼전문 이인철 법무법인리 대표변호사는 "부부는 서로 협조의무가 있다. 비록 아내가 전업주부이고 남편이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가사는 부부가 같이 분담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는 개념이 아니고 집안일도 부부가 같이 협조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다만 아내가 전업주부이므로 주된 가사 살림은 아내가 주도적으로 하고 남편은 이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아내도 직장생활을 힘들게 하는 남편을 이해하고 내조를 잘 해야하는 것은 물론이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육아도 아내가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도 적극적으로 협조할 필요가 있다. 부부 모두 자녀에 대하여 법적으로 공동친권자이므로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양해야 한다"면서 "부모는 적극적으로 양육을 해야 하고 양육비 부양료도 지급해서 자녀가 행복하게 잘 성장할 수 있게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이 부부가 이혼을 할 경우 재산분할 기여도에 이러한 사정이 반영될 것이다"라면서 "부부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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