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新 40대 기수론

입력 2018-07-03 18:42
그리스가 국가 부도 상태에 직면했던 2015년, 국민들은 41세의 알렉시스 치프라스를 총리로 선택했다. 그는 “국가 채무를 해결할 때까지 넥타이를 매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지난달 그는 “구제금융 졸업”을 선언하며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국민들은 환호했다.

유럽은 국가 위기 때마다 ‘젊은 리더’에게 구원투수 역할을 자주 맡겼다. 만 39세에 프랑스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41)과 벨기에의 샤를 미셸 총리(43) 등 40대 이하 대통령·총리가 15명이나 된다.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을 위기에서 구한 것도 40대 리더들이었다. 1997년까지 승승장구하던 보수당을 단숨에 무너뜨린 인물은 44세의 토니 블레어였다. 그해 블레어는 하원 의석 659석 중 418석(63.4%)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승리 비결은 뼈를 깎는 노동당 개혁과 중산층까지 껴안는 정책 변화였다. 이를 바탕으로 세 차례 총선에서 내리 승리했다.

반면 보수당은 잉글랜드를 제외한 곳에서는 한 석도 못 건지고 ‘동남부 지역당’으로 전락했다. 전통적인 보수 텃밭까지 노동당에 뺏긴 상태에서 새로운 철학을 정립하지도 못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보수당의 ‘젊은 아이콘’이 데이비드 캐머런이었다. 젊음과 패기를 앞세운 그는 당수가 되자마자 “보수당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보수당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당을 해체하는 수준까지 간 뒤 새로운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노력으로 보수당은 환골탈태했다. 여론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2010년 보수당이 다시 집권했을 때 캐머런의 나이는 44세였다. 캐머런은 2015년 총선에서도 국민의 재신임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존 F 케네디가 44세에 대통령이 됐다.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도 47세, 48세에 백악관 주인이 됐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 또한 44세에 집권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새로운 생각을 가진 젊은 지도자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당이나 정치 아카데미 등 청년 조직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점도 닮은꼴이다. 그 덕분에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다.

6·13 선거 참패 후 야권에서 당의 얼굴을 외부의 젊은 인물로 바꾸자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 초 김영삼·김대중의 ‘40대 기수론’처럼 40대 비상대책위원장을 모시자는 말도 나온다. 이른바 ‘신(新)40대 기수론’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을까지 한시적으로 활동할 비대위는 공천권 등 실질적인 권한을 가질 수가 없다. 블레어나 캐머런 같은 내부개혁은커녕 자칫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가 될지도 모른다. “보수는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는 영국 보수주의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와 닿는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