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 있나

입력 2018-07-02 18:23
부회장 거취 갈등 이어 사업비 편법유용 논란까지

선출부터 논란 휩싸인 송영중
고용부 출신 親노동계 성향
지난달엔 열흘간 출근 안해
손경식 회장 업무배제 지시
오늘 임시총회서 해임 논의

송영중 해임 전 터진 격려금 논란
김영배 前 부회장 "직원 임금 낮아
사업비 일부, 상여금으로 지급
법적·회계상으로 문제 없어"

경제계 "경총, 5개월째 내홍
기업 대변할 창구 사라지나" 우려


[ 도병욱 기자 ]
경영계를 대변하는 사용자 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1970년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다. ‘친(親)노동계’ 논란을 빚은 송영중 상임부회장의 거취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무국이 직원들에게 편법으로 격려금을 지급했다는 논란이 더해졌다. 지난 2월 회장 및 부회장 선임을 놓고 시작된 갈등이 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재계의 구심점이었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급격히 힘을 잃은 마당에 경총까지 손발이 묶이면 기업들을 대변할 창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내분 휩싸인 경총

김영배 전 경총 부회장은 2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언론이 제기한 ‘거액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반박했다. 이 언론은 “경총 사무국이 사업수익 일부를 몰래 빼돌려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임직원 격려비로 유용했다”고 보도했다. 이사회나 총회에 보고하지도 않았고 일부 임원이 비자금 일부를 횡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김 전 부회장이 배후에 있다고 지목하기도 했다. 김 전 부회장은 2004년부터 약 14년간 경총 부회장으로 일하다 지난 2월 퇴임했다.

그는 이날 “경총 직원의 임금 수준이 다른 경제단체보다 낮아 이를 보전하기 위해 사업비 일부를 특별상여금 형태로 줬다”며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도 아니고 회계처리까지 했는데 이를 비자금이라고 표현하는 건 잘못됐다”고 말했다. 경총도 해명자료를 통해 “2010년 이후 연구·용역사업을 통해 총 35억원가량의 수익을 확보했고 그중 일부와 일반 예산 일부를 더해 연평균 8억원을 직원들에게 특별상여금(월 급여의 200~300%)으로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김 전 부회장은 이사회나 총회에 보고하지 않은 까닭에 대해 “민간기업에서는 상여금을 지급할 때마다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는다”며 “경총 이사회에 포함된 회사 수만 100곳이 넘기 때문에 모든 안건을 이사회에서 승인받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총회에 관련 내용을 보고하지 못한 것은 절차상 잘못됐지만 특별상여금을 지급한 것 자체는 법적으로나 회계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경총 안팎에서는 ‘비자금 논란’이 불거진 배후에 송 부회장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의 경질안을 논의하는 임시총회(3일) 전날 논란이 제기된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송 부회장이 해임을 피하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누가 경총 흔드나’

송 부회장은 지난 4월 선임될 때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고용노동부 관료 출신인 그가 사용자를 얼마나 대변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여권 고위관계자가 배후에 있는 ‘낙하산’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지난 5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논란 때는 노동계 편을 들어주는 모양새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각종 논란이 이어지는 와중에 그는 지난달 초 약 열흘간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했다. 결국 손경식 회장은 송 부회장을 업무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고, 경총 회장단도 그가 자진사퇴하지 않으면 경질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후에도 송 부회장이 “자진사퇴할 생각이 없다”고 버티자 경총은 3일 임시총회를 열고 경질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경총의 한 비상임부회장은 “경총 사무국이 회계처리를 투명하지 않게 한 건 문제지만 송 부회장이 이런 식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건 더 큰 문제”라며 “이미 소명할 기회를 줬는데 그때는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다가 이렇게 언론 플레이를 하면 경총만 망가진다”고 지적했다.

경제계에서는 경총이 내홍에 휩싸이면서 기업들의 목소리를 정·관계에 전달할 창구가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 인상 등 굵직한 현안에 경총이 제 목소리를 못 내면서 정책이 한쪽 방향으로 쏠리고 있다는 우려다. 재계 일각에서는 누군가 의도를 갖고 경총을 흔들려 한다는 의혹까지 내놓고 있다. 친노동계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송 부회장이 경총 부회장으로 온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데, 그가 해임되기 직전 난데없는 비자금 논란이 불거진 데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송 부회장은 이날 회원사에 서신을 보내 “손 회장이 일부 정치권과 언론의 압력에 굴복해 경영계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며 “손 회장이 (나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객관적으로 답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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