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영 경제부 기자 syoung@hankyung.com
[ 성수영 기자 ]
지난달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과 관련해 두 개의 상반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18일 현대경제연구원은 국민의 84.6%가 에너지 전환 정책을 지지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반면 지난달 29일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원전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52%)이 축소해야 한다는 응답(32%)을 압도했다. 불과 보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국민 여론이 정반대로 뒤집히기라도 한 걸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현대경제연구원의 ‘편향된 질문’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갤럽 조사는 “우리나라 원자력발전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느냐”며 원론적인 질문을 던졌다. 반면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의 첫 질문은 “원전과 석탄발전을 축소하고 신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발전을 확대하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원전의 장점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설문 중간에는 조사원이 일방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원전 사고 위험이나 미세먼지, 온실가스 배출과 같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을 위협하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환경과 안전을 위협하더라도 생산 비용이 조금이라도 적게 드는 에너지원’과 ‘생산 비용이 다소 증가하더라도 환경과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원’ 중 선택하라는 질문까지 있었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이 같은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해 10월 다른 민간 기관이 시행한 여론조사에는 “정부는 국민의 안전 등을 고려해 원전을 더 짓지 않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한다”는 설명이 포함됐다. 탈원전 정책 찬성 비율은 60.5%로 높게 나왔다.
‘최신 효과’라는 통계학 이론이 있다. 똑같은 질문을 순서만 바꿔 던졌을 때 마지막에 나온 선택지를 선호하는 비율이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가 이렇다는 사실을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몰랐을 리 없다. 정부 일감을 자주 받는 민간 여론조사 기관들이 눈치 보기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탈원전은 시대정신이라는 정부 인사들의 소신이 왜곡된 여론조사에 기반한 게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