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문화부 기자)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갈등. 이를 40여명의 캐릭터를 통해 다루는 셰익스피어의 대작이 2인극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지난달 29일부터 7월 1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펼쳐진 국립극단의 ‘리차드 3세’인데요. 실험적인 연출로 유명한 프랑스 출신의 장 랑베르 빌드, 로랑조 말라게라가 공동연출을 맡았습니다. 이번 공연에선 오직 두명의 배우가 대작의 무게를 짊어진만큼 장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동시에 많은 한계를 보여줬죠.
빌드 연출은 왕이 되기 위해 적도, 가족도 무자비하게 처치하는 리차드 3세 역을 직접 맡아 무대에 올랐습니다. 우스꽝스러운 광대 분장을 한채 말이죠. 그리고 리차드 3세의 여인들과 수족들은 모두 프랑스 출신 여배우 로르 올프가 맡았습니다. 빌드가 중심을 잡고 올프가 계속 역할을 바꿔가며 극을 이끌어 간 것이죠.
두명의 배우로 인해 극은 더욱 촘촘하고 정교해진 느낌이었습니다. 40여명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대한 대사를 밀도있게 주고받은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고 무대를 복잡하게 오가면서 생기는 공백도 최소화되고 갈등이 온전히 두명의 배우에게 집중됐죠.
무대와 이미지의 활용도 적절히 이뤄졌습니다. 크게 4개의 공간으로 나눠진 무대 세트 안에서 배우들은 자유자재로 오가며 장면 전환을 빠르게 이끌었습니다. 두명의 배우가 다 소화하지 못하는 캐릭터는 풍선 등에 인물의 이미지를 투사해서 표현, 색다른 느낌도 줬죠.
하지만 대작의 엄청난 무게를 오직 두명이서 나눠지기엔 한계가 있어 보였습니다. 리차드 3세만을 맡은 빌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올프는 너무 많은 역할을 맡아 캐릭터가 다소 헷갈렸습니다. 복잡한 갈등을 두 사람의 목소리로만 전달하다보니 긴장감도 떨어졌습니다.
자막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프랑스어로 두 사람이 중간에서 연기를 하고 무대 양쪽에서 자막이 나왔는데요. 2인극이 큰 감동을 자아내려면 관객들이 그 감정에 쉽게 빠져들어야 하는데 압도적인 분량의 대사를 자막으로 빠르게 읽어야 해서 두 사람의 연기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2주 전 LG아트센터에서 열렸던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연출의 ‘리처드 3세’와 비교를 했을 때도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오스터마이어 연출의 작품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가미됐는데 이로 인해 캐릭터가 더욱 명확하게 부각됐습니다. 빌드의 작품에서도 왕을 광대로 표현하는 독특한 설정이 이뤄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광대로서도, 왕으로서도 캐릭터가 잘 살아나지 못한 채 끝나 아쉬웠습니다. (끝) /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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