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 '관세폭탄', 현대重 '일감절벽' 위기에도…노조는 '상습파업' 준비
최악 위기 속 "임금 올려라"
파업 투표에 쟁의조정 신청
파업 수순 밟는 현대車·현대重 노조
극심한 경영난 겪는데…
현대車, 해외판매 부진 속 경영실적 갈수록 나빠져
美가 관세 때리면 최악 위기
현대重도 해양플랜트 중단…수주 급감에 2분기째 적자
노조는 또 임금투쟁
기본급 각각 5%·8% 인상에 성과급까지 요구하며 압박
[ 도병욱/김보형 기자 ] 임금협상 중인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파업 수순을 밟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업이 극심한 판매 부진과 일감 부족으로 위기에 처했지만 현대차 노조는 7년 연속, 현대중공업 노조는 5년째 파업에 나설 태세다.
28일 노동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다음달 2일 조합원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투표를 한다. 이 회사 노조는 지난 20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중앙노동위가 노사 양쪽의 의견을 조율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고 조합원 투표에서 파업안이 통과되면 노조는 파업권을 확보하게 된다.
현대중공업 노조도 20일 중앙노동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이 회사 노조는 지난 4월 조합원 찬반투표를 해 51.7%의 찬성으로 파업안을 가결시켰다. 두 회사 노조는 다음달 13일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주도하는 총파업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실적 악화로 ‘비상경영’에 들어간 두 회사는 노조의 파업 움직임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현대차의 지난해 순이익은 4조5464억원으로 전년보다 20.5% 급감하며 2010년 이후 최악의 실적을 보였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 1분기에도 적자를 냈다. 회사가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데도 노조가 지나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경영난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기본급을 지난해보다 11만6276원(5.3%·호봉 승급분 제외) 올리고 연간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7.9%의 기본급 인상(14만6746원)과 250% 이상의 성과급 지급을 협상 조건으로 내걸었다. 사측은 경영 실적을 고려할 때 노조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경제계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조의 파업 움직임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와 조선산업이 사실상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대표 회사의 노조가 동시에 파업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가 올해 파업을 강행하면 2012년 이후 7년 연속 파업을 하게 된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네 차례를 빼고 매년 파업을 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2014년 이후 매년 파업을 벌이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재계에서는 실적악화 시달리는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이 노조의 파업을 감당할 만한 ‘체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조5757억원에 그쳤다. 전년보다 11.9% 줄었다. 이 회사의 연간 영업이익이 5조원을 밑돈 것은 국제회계기준(IFRS)이 적용된 2010년 이후 처음이다.
중국과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극심한 판매 부진에 시달린 탓이다. 지난해 현대차가 세계시장에서 판매한 차량은 450만6527대로 2016년보다 6.4% 감소했다. 올해도 사정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대차의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6812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45.5%나 급감했다.
현대차가 위기를 겪고 있는 표면적 이유로는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및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 부재 등이 거론되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고질적인 ‘고임금·저효율 생산 구조’에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분석에 따르면 현대차의 평균 임금은 일본 도요타 등 경쟁사보다 높지만 차량 1대를 생산하는데 걸리는 시간(HPV)는 더 길다.
미국발(發) 관세 폭탄이 현실화하면 더욱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수입자동차에 20~25%의 고율 관세를 물리면 미국 수출을 사실상 접어야 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미국에 30만6935대를 수출했다. 전체 해외 수출량의 31.8%에 달한다.
‘수주 절벽’에 직면한 현대중공업도 사정이 다급하다. 이 회사는 8월부터 해양플랜트 야드(작업장)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지난 22일 발표했다. 2014년 이후 해양플랜트를 한 건도 수주하지 못해 일감이 없어서다. 해양사업본부 임원은 3분의 1을 줄였다. 2015년 이후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까지 내려가면서 해양플랜트 발주 자체가 줄어든 데다 최근 재개되는 발주 물량은 높은 인건비 탓에 싱가포르와 중국 등 경쟁국에 모두 뺏겼다. 수익성이 높은 해양플랜트 수주물량이 없어지면서 유휴인력이 3000명가량으로 늘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 1분기에도 영업손실을 냈다. 이대로 가면 연간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회사측은 예상하고 있다.
◆“판매부진·일감부족 가중” 우려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파업에 나서면 두 회사의 영업실적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으로 생산라인을 멈추면 그나마 잘 팔리고 있는 신형 싼타페 등의 생산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파업을 하면 ‘일감 부족’ 현상을 부채질 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노조의 파업으로 납기를 맞추지 못할 것을 우려한 선사들이 현대중공업에 선박을 발주하는 것을 기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직원의 평균 연봉은 각각 9200만원, 6260만원이었다”며 “두 회사 노조가 임금을 더 올려달라고 파업에 나서면 아무도 공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병욱/김보형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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