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4차 산업혁명과 아이디어
4차 산업혁명 시대 신기술은
과거 아이디어와 무관치 않아
첨단기술 시대의 창의성은
옛것을 재발견·통합하는 능력
2013년 일론 머스크의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모터스는 모델 S를 출시했다. 새로운 모델명인 S는 세단(Sedan) 혹은 설룬(Saloon)의 약자지만, 특별한 역사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헨리 포드의 모델 T보다 알파벳 순서가 앞선 S를 사용함으로써 휘발유차 이전에 전기차가 있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반복되는 과거의 아이디어
전기자동차는 최근에 등장한 기술로 알고 있지만, 그 역사가 휘발유 자동차보다 깊다. 최초의 전기차는 1834년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앤더슨이 발명했다. 이후 더욱 실용적인 전기차가 등장하면서 19세기 말 런던에는 전기차 택시들이 운행되었다. 19세기 말 미국에 등록된 전기차가 3만 대 이상이었다는 점에서 당시의 전기차의 인기를 엿볼 수 있다. 전기차는 휘발유 자동차보다 조용했고, 오염물질의 배출도 적어 인기가 높았다. 현대의 전기차가 신기술로 인해 상품성이 높아졌을 뿐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 오늘날에 새롭게 발견된 것으로 간주되는 많은 발명이 과거에 토대를 두고 있다. 과학철학자인 파이어아벤트는 그의 책 《Against Method》에서 어떤 발명도 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근 유해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전자담배도 마찬가지다. 2003년 중국의 약사인 한리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자담배에 대한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이보다 반세기 앞선 1965년 미국의 허버트 길버트가 최초로 발명한 것이었다.
기술만 옛것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발생하는 경제 현상도 과거의 반복인 경우가 존재한다. 2007년 전 세계를 덮친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부와 소득이 자의적으로 불평등하게 분배된 결과라는 비판은 80년 전 케인스가 이미 예상하여 언급한 내용이다. 과거의 조언이 반영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먼은 2015년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학계가 케인스 사상을 억압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케인스의 주장대로라면 정부는 기업신뢰지수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불경기에 대한 대응으로 복지프로그램을 축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기득권들이 케인스의 경제학이 옳지 않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아이디어가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오래된 아이디어가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문화·사회적, 경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Rethink》의 저자 스티븐 폴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중요한 이해관계에 강력하게 도전하거나 시기상조이거나, 혹은 적절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디지털 경제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이다. 과거의 프로그래밍은 완전한 기계어였기 때문에 매우 복잡했다.
하버트 컴퓨터 연구소에 배치된 여군 중위인 그레이스 호퍼는 보다 프로그래밍을 쉽게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1951년 기계어를 친숙한 일반어로 바꿔주는 ‘컴파일러’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특정 방정식을 푸는 프로그램을 짜는 데 14시간이 걸렸다면 이 중 8시간은 기계어를 입력하는 데 소요되었다. 하지만 컴파일러를 활용하면 1시간이면 충분했다. 오늘날 프로그램 과정에서 ‘if’, ‘not’ 등과 같은 일반어가 등장할 수 있던 이유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여성 프로그래머의 결과물이라는 이유로 오랜 기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전문가 프로그래머들의 이해관계에 도전했을 뿐만 아니라 부적절한 사람으로부터 나온 탓이다. 새로운 진리는 설득을 통해서 인지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자들이 죽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익숙한 세대가 성장함으로써 받아들여진다는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기존 아이디어의 재발견
스페인 태생의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전에 볼 수 없던 기술적 진보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디지털 경제 시대일지라도 오류와 진화의 역사적 단계를 지나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현재도 곧 다른 역사의 일부가 될 것이다. 과거가 미래를 보장해주는 가이드가 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과거뿐이다. 혁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창의성이 다른 영역에 속하는 기존의 아이디어를 재발견하고 통합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 볼 시점이다.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