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세계 공통 특허' 산실로서의 한국을 꿈꾼다

입력 2018-06-24 17:32
AI 기반의 정보시스템 구축 등
심사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여
'우리 특허=세계 특허' 되게 할 것

성윤모 < 특허청장 >


‘호국보훈의 달’ 6월이 되면 필자는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1909년 10월26일 러시아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코리아 후라(만세)”를 세 번 외쳤다고 한다. 1910년 2월15일자 황성신문은 “短銃을 投地한 後 世界共通語로 코리아 후라(大韓國萬歲)를 三唱하고(권총을 땅에 던진 뒤 세계 공통어로 대한국 만세를 세 번 외치고)”라고 당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 기사에서 말하는 세계 공통어는 에스페란토다.

에스페란토는 폴란드 안과의사 자멘호프가 국제공용어로 쓰기 위해 1887년에 만든 언어다. 당시 자멘호프가 살던 폴란드에는 폴란드인 러시아인 유대인 독일인이 살았는데, 언어와 종교가 달라 서로 다투고 있었다. 말이 다른 민족끼리 평등한 입장에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자멘호프는 공통어인 에스페란토를 창안했다.

서로 다른 언어 간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또 다른 사람으로 미적분학을 발명한 수학자 라이프니츠를 들 수 있다. 외교관이기도 했던 라이프니츠는 독일과 프랑스가 협상할 때 생기는 소통의 문제가 언어의 차이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완벽한 소통의 도구로 이진법을 만들었다. 누구나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 것이다.

다른 언어 간 소통을 위한 인류의 오랜 꿈은 이제 인공지능(AI) 기계번역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구글 번역은 세계 100여 개 언어를 번역할 수 있는데, 대부분 AI 기술 중 딥러닝을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딥러닝을 활용한 인공신경망 기계번역을 맨 처음 시작한 사람은 한국인 조경현 교수다. 오랜 세월 성능 향상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기계번역 분야에 딥러닝 기술의 등장은 일대 사건이었다. 최근에는 이어폰만 끼면 상대방 언어를 자국 언어로 번역해 주는 제품까지 나왔다고 하니, 언어의 차이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조성하는 데 한국인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특허청도 특허 분야에서 세계 공통어를 꿈꾸고 있다. 속지주의가 적용되는 특허제도 속성상 국가마다 특허를 따로 받아야 하므로 ‘세계 공통 특허’라는 개념은 아직 없지만, 한국 특허청의 심사를 통과한 특허가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특허로 인정받아 실질적인 세계 공통 특허로 통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미 미국, 유럽, 일본, 중국 특허청과 함께 세계 5대 선진 특허청에 속하는 우리 특허청은 심사품질 중심 조직으로 한 단계 도약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작년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식재산 정책방향’을 수립했다. 여기에는 심사품질 대책과 AI 기반의 정보시스템 구축 계획이 포함돼 있다. 특허와 논문을 통해 전 세계 발명자들과 소통하는 심사관들을 위해 기계번역에 AI를 우선 적용할 생각이다.

안 의사가 외친 말이 에스페란토였는지 러시아어였는지 논란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강대국 언어가 강요되지 않고 모든 민족이 고유의 문화유산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을 바란 자멘호프의 꿈이 담긴 에스페란토를 통해 일본의 침탈로 칼날 위에 선 조국의 상황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려 하지 않았을까 싶다.

스스로의 힘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조국을 만들고자 한 안 의사 뜻을 이어받아, 우리 국민이 개발한 우리 특허가 세계 공통 특허로 당당히 세계 시장을 주름잡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