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9급서 출발해 차관까지… 근성으로 '학력 벽' 뛰어넘어
[ 이태훈/김일규 기자 ]
그의 꿈은 공무원이 아니었다. 배움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컸지만 가난이 발목을 잡았다. 일반고가 아니라 농업고에 진학한 것도 영농학생으로 학비를 감면받을 수 있어서였다. ‘먹고살기 위해’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농림직 9급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청년은 40년 뒤 농촌진흥청장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라승용 농촌진흥청장(60)은 ‘고졸 9급’ 출신이 차관급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점에서 작년 7월 취임 당시 화제가 됐다. 고졸 성공신화를 쓴 만큼 ‘독한 사람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라 청장의 인상은 푸근한 농사꾼 같았다. 라 청장 단골 맛집인 전북 김제의 ‘삶의 향기’도 그를 닮은 시골 한식집이다. 김제는 라 청장의 고향이다.
“나에게 농업은 천직”
라 청장은 “전라도 음식이 한국 음식의 표준이자 중심인데 그중에서도 전주와 김제가 으뜸”이라고 했다. “김제를 중심으로 넓은 평야가 있어 넉넉한 식재료가 나오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테이블에 앉자 산뽕잎나물, 토란줄기, 고춧잎, 여주 장아찌, 자색 돼지감자, 고추 장아찌 등 6가지 밑반찬이 나왔다. 후덕한 외모의 허영숙 삶의 향기 대표가 직접 음식을 날랐다. 허 대표는 연한 녹색을 띤 묵을 내오며 “요 앞 모악산에서 딴 꾸지뽕 잎으로 쑨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 청장은 “지금 식탁에 있는 것 중 구절판용 새우를 제외한 모든 게 이곳 김제에서 나온 식재료”라고 거들었다.
라 청장은 “지역 농산물을 이용하는 등 향토색이 강한 농촌 식당을 선정해 지원하는 농가맛집 사업을 2007년부터 하고 있다”며 “삶의 향기도 2014년 선정돼 김제의 명소가 됐다”고 소개했다. 농가맛집으로 선정된 식당은 전국에 117개가 있다.
라 청장에게 농촌에 대한 애정이 특별한 것 같다고 하자 “농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라 청장은 “걸음마를 떼고부터 아버지 옆에서 논에 물대는 것과 괭이로 논 고르는 걸 도운 것 같다”며 “아버지가 새벽 4시면 나를 깨워 같이 농사일을 하러 다니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때는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도 왜들 다 가난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라 청장은 “농고를 간 것도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라 청장은 김제농고에서 학교 채소밭을 관리하는 영농학생이 돼 학비를 일정 부분 감면받았다. 그는 “새벽에 등교해 수업 시작 전 밭을 일구고 수업이 끝난 뒤에도 다시 밭으로 나갔다”며 “학비를 전액 감면해주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성적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최근 모교에서 특강을 할 일이 있어 갔다가 과거 내 성적표를 봤는데 전 과목에서 모두 1등이었더군요. 당시에는 절박해서 장학금 받으려고 공부했는데 전 과목 1등을 했는지는 몰랐어요. 그만큼 정신없이 공부한 것 같습니다.”
그가 목표로 한 대학은 공주사범대였다. 교사가 돼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다. 라 청장은 “고3 때 독서실에서 대입 공부를 하고 있는데 친한 친구는 농촌지도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더라”며 “그 친구가 시험에 합격하는 걸 보고 내 처지에 꼭 대학에 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라 청장도 공무원 시험으로 방향을 틀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인 1976년 농림직 9급 시험에 합격했다. 그의 첫 부임지는 부산생사검사소였다. 누에에서 뽑은 실(생사)의 품질을 검사하는 기관이었다. 생사는 가발과 더불어 당시 한국의 주력 수출품이었다. 라 청장은 “주요 수출품인 생사를 검사하는 일이어서 대우가 좋았고 동료들과 어울려 막걸리도 마시고 즐겁게 지냈다”며 “가장 좋은 때였던 것 같다”고 돌이켰다.
“평가 나쁘면 내 발로 나가겠다”
라 청장과의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메인 요리인 돼지고기 수육이 나왔다. 허 대표는 “한약재를 넣고 삶아 잡내가 없다”며 “구기자 열매와 발효청을 넣어 만든 소스를 끼얹었다”고 설명했다. 라 청장은 “일반 돼지가 아니라 흑돈”이라고 소개했다.
라 청장은 뒤늦게 진학의 꿈을 꿨다. “공무원 생활을 하며 야간 대학을 다니길 원했는데 부산에는 농업 관련 학과가 있는 야간대가 사립대인 동아대뿐이었다”고 했다. 학비가 비싼 사립대를 다닐 형편이 안 됐던 라 청장은 서울에 있는 국립농업자재검사소에 자리가 하나 비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라 청장은 “서울에는 야간 대학이 많으니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1980년 국립농업자재검사소로 옮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라 청장의 서울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부가 1981년 경기 수원에 농약연구소를 신설했는데 국립농업자재검사소와 농촌진흥청의 직원들을 차출해갔다. 라 청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라 청장은 “농약연구소 직원은 신분이 연구원이어서 다들 석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한 사람들이었다”며 “고졸이 연구원으로 온 것이 못마땅했던 과장이 나에게 일을 주지 않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과장은 라 청장에게 농업기술센터 지도직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러자 라 청장은 “저는 장관의 발령을 받고 여기 왔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려면 다시 장관을 통해 발령을 내주십시오”라고 당돌하게 얘기했다. 그러면서 “일을 시켜봐서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면 내 발로 나가겠다”고 했다.
과장은 라 청장을 포함한 몇 명에게 업무 보고서를 작성해오라고 했다. 누가 보고서를 작성했는지 알 수 없는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라 청장은 “여러 번의 테스트에서 모두 제 보고서가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그다음부터는 과장을 포함한 모두가 나를 인정해줬다”고 했다. 그는 “그 일을 겪으며 ‘안 될 일도 없고 못 할 일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생각이 좌우명이 됐다”고 덧붙였다.
1982년엔 방송통신대 농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졸업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여름과 겨울에 1주일씩 출석해야 하는데 여름에는 병해충 방제 업무 때문에, 겨울에는 농약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출석하지 못 했다.
당시 연구직 공무원에게는 일종의 승진 시험인 연구관 시험이 있었다. 근무 평정이 좋은 사람에게 5급인 연구관으로 승진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라 청장은 1992년 이 시험을 1등으로 통과했다.
연구관이 되니 근무지가 원예시험장으로 바뀌었다. 공직생활 중 줄곧 농약만 파고들었던 그에게 원예는 용어부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라 청장은 고려대 원예학과 대학원에 들어갔고 거기서 박사 학위까지 땄다.
이후 농촌진흥청에서 연구운영과장, 연구개발국장 등 요직을 거쳤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농촌진흥청 차장을 하고 공직을 떠나 전북대 원예학과 석좌교수로 6개월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청장에 임명돼 다시 농촌진흥청으로 복귀했다.
라 청장은 “청와대 인사수석실에서 저를 지명할 때 ‘농고를 나온 9급 출신이라는 걸 강조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며 “그걸 알리는 게 내가 청장 업무를 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한 것 같다”고 했다. 라 청장은 “저는 오히려 그 얘기를 꼭 해달라고 부탁했다”며 “그래야 많은 사람이 꿈과 희망을 품고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젊은 농업인 많이 생겨야”
라 청장은 쌀 과잉생산 등 농업의 많은 문제점이 농촌의 고령화 때문이라고 봤다. 라 청장은 “쌀 생산조정제가 잘 안 되는 것도 농촌에 가면 다 노인들뿐이어서 상대적으로 쉬운 쌀농사밖에 안 짓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농업인 고령화율(농촌 인구 중 만 65세 이상 비율)은 2005년 29.1%에서 작년 41.2%로 상승했다. 라 청장은 “청년들이 농업에 많이 뛰어들어 도전적으로 여러 작물을 재배해야 농촌이 살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올해 청년창업농 1200명을 선발해 월 최대 100만원을 지원하는 등 2020년까지 청년창업농 1만 명을 육성할 계획이다.
라 청장은 남북한 경제협력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개방한다면 식량 생산성 향상을 위해 농업 부문에서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라며 “농촌진흥청이 할 일이 많아질 것이고 지금도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957년 전북 김제 출생
△1976년 김제농고 졸업 부산생사검사소
△1981년 농촌진흥청 농약연구소
△1992년 방송통신대 농학과 졸업
△2007년 농촌진흥청 연구개발국장
△2008년 국립축산과학원장
△2012년 국립농업과학원장
△2013년 농촌진흥청 차장
△2017년 전북대 석좌교수 농촌진흥청장
농촌진흥청은
직원 60%가 연구직… 미래농업 이끌 기술지원
농촌진흥청은 농업과 관련한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기관이다. 1962년 농사원과 농림부 지역사회국·훈련원·제주목장·중앙전매연구소 등이 통합해 발족했다. 농업 유전자원의 관리 및 육성품종의 보호, 품종개량과 재배법 개선, 농업 기술 보급 및 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국립농업과학원, 국립식량과학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립축산과학원을 소속 기관으로 두고 있다. 1860명의 정규직 직원이 있고 이 중 1174명이 연구직이다. 본청은 경기 수원에 있었으나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에 따라 2014년 전북 전주로 옮겼다.
라승용 청장의 단골집 삶의 향기
한약재 넣은 흑돈 수육 일품… 계절 나물로 차려낸 농가 한정식
‘삶의 향기’는 전북 김제시 모악산 자락의 어유동마을에 있는 시골 한정식집이다. 대부분 김제에서 난 식재료를 사용한다. 전통장류 제조사 자격증을 소지한 허영숙 대표가 퇴역 군인인 남편 이병길 씨와 함께 운영한다.
장수밥상(2만5000원), 벼고을굴비밥상(3만원), 벼고을명품밥상(3만5000원) 등 세 가지 코스가 있다. 세 코스 모두 밑반찬으로 여러 계절나물과 장아찌가 나온다. 나물은 주로 산뽕나뭇잎, 어린 고춧잎, 피마자잎, 고사리, 고비나물 등을 사용하고 장아찌는 돼지감자, 오가피순, 곰취 등으로 만든다.
전라도식 걸쭉한 들깨탕이 나오는데 토란이나 감자, 버섯 등이 들어간다. 유기농 꾸지뽕 잎으로 만든 졸깃하고 탱탱한 묵도 이 집의 자랑거리다. 김제에서 많이 생산되는 파프리카로 만든 잡채와 연근전도 입맛을 돋운다.
메인요리로 나오는 돼지고기 수육(사진)은 한약재를 넣어 삶았다. 김제 한돈농장에서 나오는 두륙돼지(흑돼지)를 사용한다. 벼고을굴비밥상은 여기에 영광 보리굴비가 추가로 나오고 벼고을명품밥상은 보리굴비와 함께 연잎밥이 제공된다. 음식 주문은 4인 이상 가능하고 하루 전 예약해야 한다. 호남고속도로 금산사나들목에서 차로 5분 거리다.
김제=이태훈/김일규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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