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독소 품은 건강식품… 통밀·현미의 배반?

입력 2018-06-21 17:37
플랜트 패러독스

스티븐 R. 건드리 지음 / 이영래 옮김
쌤앤파커스 / 392쪽│1만8000원


[ 서화동 기자 ]
‘다이어트, 건강, 체중에 대해 당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틀렸다.’ 신간 《플랜드 패러독스》의 저자는 이렇게 도발적인 문장으로 책을 시작한다. 로마의 린다 의과대학에서 외과·소아 흉부외과 과장으로 일하다 복원의학으로 진로를 바꾼 저자는 자신도 수십 년 동안 거짓말들을 믿고 살았다고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었고, 패스트푸드는 거의 먹지 않았으며 저지방 유제품과 통곡물을 즐겨 먹었다.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혈압, 편두통, 관절염에 시달렸고 과체중, 고콜레스테롤, 인슐린 저항 상태였다. ‘뭐가 잘못된 거지?’ 책 제목에 답이 있다. ‘식물의 역설(The Plant Paradox)’. 식물이 자신을 먹어치우는 동물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독소의 존재와 작용을 모른 채 헛다리만 짚었다는 얘기다.

그 독소란 렉틴(lectin)이다. 식물 단백질인 렉틴은 식물이 포식자인 동물에게 반격하는 수단이다. 식탁에 놓인 잎, 열매, 곡물 등의 식물성 음식은 자신의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식물이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약 4억5000만 년 전, 최초의 곤충은 이로부터 9000만 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이후 식물은 갖가지 동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독을 퍼뜨리거나, 마비시키거나, 감각을 혼란시키는 생물학적 전투를 벌여 포식자를 물리쳤다.

식물은 또한 소화가 안 되도록 단단한 껍질로 씨앗을 보호했다. 미네랄의 흡수를 막는 파이테이트, 소화효소의 작용을 막아 포식자 성장을 방해하는 트립산 억제인자, 장 내벽에 틈새를 만드는 장누수증후군을 일으켜 세포 간 통신을 방해하는 렉틴 등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통곡물은 섬유로 된 껍질, 겉껍질, 겨 안에 이 세 가지 방어용 화학물질을 모두 갖고 있다고 한다. 토마토, 감자, 가지, 후추 등 가지속(屬) 식물들은 염증을 유발하는 강한 능력도 갖고 있다. 건강식품이라고 알려져온 현미와 통밀, 귀리, 보리 같은 통곡물, 토마토, 가지류 등은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이유다. 채소와 과일을 많이 섭취할수록 좋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예를 들면 통곡물이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역사는 50년 정도에 불과하다. 상당수 현대인은 현미가 백미보다 몸에 좋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쌀을 주식으로 하는 40억 아시아인들은 왜 오래전부터 현미의 외피를 벗겨 백미로 먹었겠느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서구의 특권계급은 흰 빵을 먹고 현미와 통밀로 만든 갈색 빵을 소작농들에게 줬던 것과 같은 이치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통곡물은 섬유질을 벗겨낸 곡물보다 '렉틴'이 많아서 먹으면 속이 불편할 뿐 아니라 과체중과 염증을 유발한다는 것. 곡물 껍질에 렉틴이 많기 때문에 인류는 일찍부터 이를 제거해서 먹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렉틴의 부작용 내지 역습의 결과가 심각하다는 데 있다. 렉틴은 포식자 몸 속의 탄수화물, 특히 다당류(당질 복합체)와 결합해 스마트 폭탄처럼 다른 유기체, 특히 곰팡이와 곤층, 다른 동물의 세포 표면을 표적으로 삼아 달라붙는다. 렉틴은 혈관표층 세포와 장, 대뇌, 신경 말단 사이, 관절, 체액의 당 분자와 결합해 세포들 사이의 메시지 전달을 방해하고, 독성이나 염증성 반응을 유발한다.

그럼 수천 년 이상 렉틴과 싸워온 인간이 왜 근래에 와서 심각한 위험에 처했을까. 저자는 △밀을 비롯한 곡물과 콩으로 식단이 바뀐 5000년 전의 농업혁명 △정상적인 A-2 카제인이 아니라 A-1 카제인 단백질이 든 우유를 생산하는 낙농업 △온갖 새로운 렉틴에 노출되도록 만든 신세계(아메리카)의 식물들 △가공식품과 유전자변형식물에 포함된 또다른 렉틴의 습격 등이 복합작용을 일으킨 결과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수많은 항생제와 소염제, 제산제, 인공감미료, 플라스틱과 방향성 화장품 등에 포함된 내분비 교란물질 등은 렉틴과 싸워서 인체를 보호해야 할 장내 유익균들을 섬멸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몸에 좋은 음식’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며‘플랜트 패러독스 프로그램'이라는 3단계의 식습관 교정 방안을 제시한다. 렉틴을 피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요체인데, 단계별로 허용 및 금지식품 목록을 제시한다. 1단계에서는 3일간 단식을 통해 몸속을 정화하고 2단계에서는 6주간 식단을 유지해 장의 기능을 회복한다. 3단계에서는 이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아울러 이런 식단을 실천할 수 있는 36가지 레시피도 수록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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