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이 남극점을 처음 밟은 것은 1911년 12월14일 오후 3시. 항해를 시작한 지 16개월, 남극대륙에 상륙한 지 11개월 만이었다. 이보다 두 달 먼저 출항한 영국 탐험가 로버트 스콧은 이듬해 1월에야 남극점에 닿았다.
이 과정에서 아문센은 단 한 명의 대원도 잃지 않았다. 귀환 중 전 대원을 잃고 자신도 죽은 스콧과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아문센의 성공 비결을 ‘현지화 원칙에 따른 철저한 준비’에서 찾는다.
첫 번째는 방한복의 승리다. 일찍이 북극 항로 개척 때 원주민과 친분을 쌓은 그는 순록가죽으로 만든 털옷을 준비했다. 추위를 막기에 가장 좋으면서도 외부 습기를 차단하고 내부 땀은 배출할 수 있는 옷이었다. 신발도 털가죽 장화로 준비했다.
식량 역시 북극 원주민의 주식인 페미컨(고기를 말린 후 과실과 지방을 섞어 빵처럼 굳힌 음식) 같은 전통 보존식품으로 채웠다. 현지에서는 바다표범을 사냥해 먹었다. 운송 수단은 개썰매와 스키로 해결했다. 세계 개썰매선수권대회와 스키대회 우승자도 뽑았다. 스콧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말을 짐꾼으로 삼은 것과 접근부터 달랐다.
이른바 ‘이정표의 원칙’도 빼놓을 수 없다. 일정 간격으로 깃발을 높게 세워 멀리서도 위치를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제때 남극점에 도달하고 제때 귀환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불필요한 장비는 과감하게 버렸다.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도 탐험이라는 최종 목표에 방해되면 과감하게 버렸다.
아문센의 성공 이후 남극대륙 횡단에 나선 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도 이런 원칙을 중시했다. 이미 두 차례 남극에 상륙하는 과정에서 그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섀클턴이 세 번째 남극 도전에 나선 1914년, 부빙(浮氷)에 갇혀 몰살 위기에 처했다가 15개월 만에 전 대원을 무사 귀환시킨 저력 또한 여기에서 나왔다.
데니스 퍼킨스 전 예일대 교수는 섀클턴의 위기탈출 법칙을 ‘서바이벌 리더십’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궁극적인 목표를 기억하면서 단기 목표 달성에 진력하라” “불필요한 대립을 피하고 함께 웃을 일을 찾아라” “팀 메시지를 강화하고 단결심을 키워라” 등으로 요약된다. 섀클턴은 구명보트에 타기 전 대원 앞에서 자신의 순금 담배케이스를 먼저 버리며 ‘솔선수범의 법칙’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원리는 “절대 포기하지 마라. 또 한 번의 기회가 있다”였다. 좌절이야말로 모든 가능성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독이다. 아문센 90주기를 맞아 약 1세기 전에 보여준 두 사람의 생존과 성공 원리를 지금 우리 사회에 비춰본다. “준비에 실패하는 자는 실패를 준비하는 자”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격언도 함께 새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