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실리콘밸리보다 BAT를 배워라

입력 2018-06-18 19:22
10억 이용자 기반, 빠르게 추격한 BAT
한국 ICT도 그들의 혁신역량 활용해야

박래정 < 베이징 LG경제연구소 수석대표 >


중국 인터넷 공룡으로 불리는 3대 기업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의 영향력은 어느덧 서해를 넘어 한국에도 크게 미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서울 도심 가게 중엔 알리바바의 모바일 결제서비스(支付寶·즈푸바오)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적지 않다. 텐센트의 무료 채팅앱(微信·웨이신)을 이용하는 젊은 층이 늘고 있고, 텐센트 모바일 게임은 국내 양대 공급업체가 보급에 나선 만큼 상당한 고객층을 확보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나 중국 유학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훨씬 빨리 BAT가 한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BAT는 글로벌 정보기술(IT) 전문가들 사이에선 선도업체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을 열심히 벤치마킹하는 후발주자라는 인상이 짙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발(發) 혁신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혁신 동향에 더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이두가 2014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한 온·오프라인 연계사업(O2O) 모델은 사실상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접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알리바바가 2011년 출시한 자사 운영체제(AliOS)도 시장에선 찬밥 신세에 가까웠다. 텐센트도 기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게임 광고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을 뿐 실험적인 혁신활동엔 의지가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최첨단을 걷는 혁신기업들의 눈높이에 따른 것일 뿐, 한국 정보통신기술(ICT)업계가 BAT를 평가절하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BAT를 한국 기업들이 배우고 활용해야 할 처지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우선 BAT는 글로벌 ICT 분야에서 혁신 리딩그룹은 아닐지언정 ‘가장 빠른’ 추격자 대열에 올라섰다는 데 이견이 없다. 글로벌 시장이 기술 진화 과정을 거치며 여러 거대 기업에 의해 분점돼 각기 혁신을 주도하려는 것과 달리, 중국에선 BAT가 조성한 혁신 생태계에 포함된 거의 모든 유관기업은 사실상 ‘을’이다. 차세대 자동차 개발에는 글로벌 명차 브랜드까지 경쟁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중국 정부도 거리낌 없이 수천만 명분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이들 3사가 많게는 10억 명에 가까운 이용자 기반을 둔 강력한 플랫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은 필연적으로 기존 부가가치 사슬을 흔들어 놓는데, 강력한 플랫폼 기업이 주도하게 될 이익 조정 덕택에 혁신의 불협화음을 줄일 수 있다.

BAT 모두 핵심 연구개발(R&D) 조직을 실리콘밸리, 시애틀 등지에 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미국의 우수 인재를 받아들여 인공지능 개발의 핵심으로 부상한 데이터분석 역량을 키우기 위함일 것이다. 혁신 과정을 처음부터 중국어와 영어 공용으로 진행하는 것도 궁극적인 성과를 글로벌 시장에서 거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중국 시장을 장악한 BAT는 동남아시아, 인도 등지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바이두가 지난해 인공지능 기업으로의 전환을 표방한 이후 3사의 경쟁은 불을 뿜고 있다. 인공지능을 정점으로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전(全) 가치사슬이 혁신의 도마에 오르자, 광고 유통 의료서비스 콘텐츠 택배 등 BAT의 기존 사업영역은 물론 스마트팩토리 사물인터넷 등 거의 모든 미래 영역이 BAT 간 전장으로 변했다.

한국 ICT업계가 글로벌 혁신전쟁에서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실리콘밸리형 혁신기업이 될 수 없다면, 이들을 가장 빨리 추격하는 BAT와 분초를 다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