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고삐는 채우는 게 아니라 채는 거죠~

입력 2018-06-18 09:00

고삐는 '말이나 소를 몰거나 부리려고 재갈이나 코뚜레, 굴레에 잡아매는 줄'을 말한다. 의미에 따라 '고삐를 채다(잡아채다)/매다/잡다/당기다/늦추다/조이다/틀어쥐다' '고삐가 풀리다' 등 다양하게 쓰인다.

요즘 시골은 한창 바쁜 농사철이다. 예전에 농가에선 소가 재산 1호이자 무겁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던 존재였다. 동고동락을 함께한 반려동물이었다. 요즘은 트랙터 등 기계화에 밀려 시골에서도 일소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우리말에는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중 한 가지를 살펴보자. “가사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굴레” “대북 제재 고삐는 쥐고 있어야” “류현진, 패전의 멍에 썼다” “비판 여론에 재갈 물리는 중국”….

굴레, 멍에 등과 함께 ‘속박’ 나타내

언론 보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말들에는 공통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두루 구속이나 억압, 속박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핵심어는 굴레, 고삐, 멍에, 재갈이다. 이들은 마소를 부리기 위한 도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거기서 연유해 ‘굴레를 씌우다, 고삐가 풀리다, 멍에를 메다, 재갈을 먹이다’ 같은 관용 표현들이 나왔다. 이들 관용구는 비슷한 것 같지만 미세하게 그 쓰임새가 다르다. 또 함께 어울려 쓰는 서술어에도 차이가 있어서 이를 잘 구별해 써야 한다.

재갈은 말을 부리기 위해 아가리에 가로 물리는 가느다란 막대를 말한다. 보통 쇠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고삐를 매어 말을 부렸다. ‘재갈을 물리다(채우다/먹이다)’라고 하면 ‘사람의 입막음을 하다’라는 뜻으로 확대돼 쓰인다. 그런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것은 ‘재갈을 풀다’라고 한다. 이때 자칫 ‘재갈’을 ‘자갈’로 쓰기도 하지만 이는 비표준어다. 우리는 재갈을 표준어로 삼았다.(다만 북한에선 재갈과 자갈을 함께 쓴다는 점을 참고로 알아둘 만하다. 주로 자갈을 쓴다.) 말에게는 재갈을 물렸고, 소한테는 코뚜레를 꿰었다. 코뚜레는 소의 코청(두 콧구멍 사이를 막고 있는 얇은 막)을 꿰뚫어 끼우는 나무 고리를 말한다. 여기에 고삐를 매어 소를 몰았다.

굴레는 말이나 소 따위를 부리기 위하여 재갈이나 코뚜레에 이어서 머리와 목에 걸쳐 얽어매는 줄이다. 여기서 의미가 확대돼 ‘부자연스럽게 얽매이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삶의 굴레/인습의 굴레’처럼 쓰여 ‘속박’을 나타낸다. ‘굴레’와 어울리는 말은 비교적 단순해 ‘굴레를 쓰다/벗다’ 정도다.

어울리는 서술어 달라 구별해 써야

굴레까지 씌웠으면 이제 고삐를 맬 채비가 갖춰졌다. 고삐는 ‘말이나 소를 몰거나 부리려고 재갈이나 코뚜레, 굴레에 잡아매는 줄’을 말한다. 의미에 따라 ‘고삐를 채다(잡아채다)/매다/잡다/당기다/늦추다/조이다/틀어쥐다’ ‘고삐가 풀리다’ 등 다양하게 쓰인다. 이 가운데 ‘고삐를 채다(잡아채다)’라고 하면 ‘사태의 긴장을 유지하도록 다그치다’란 뜻이다. ‘지금 고삐를 채야 승리할 수 있다’처럼 쓴다. 이를 간혹 ‘고삐를 채우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틀린 표현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고삐를 채다’가 와전된 것이다. 고삐는 ‘줄’이므로 차거나 채우는 게 아니다. ‘(범인에게) 수갑을 채우다’라고 할 때의 ‘채우다’로 볼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채우다’는 ‘차다’의 사동형이다. 즉 ‘(범인이) 수갑을 차다’가 기본형이다. 이때의 ‘차다’는 ‘(수갑이나 차꼬 따위를) 팔목이나 발목에 끼우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의미와 쓰임새가 다른 말이다. 고삐는 줄이라 채울 수 없고 채거나 매는 것이다.

멍에는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하여 마소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를 말한다. 이 말은 어울리는 서술어가 몇 개 안 된다. ‘멍에를 메다/쓰다’라고 한다.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도록 얽매이다’란 뜻이다. 이런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멍에를 풀다’라고 한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