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노예의 눈물·독립운동가의 피로 지어진 쿠바 카마구에이
사람 키보다 큰 사탕수수가 평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의연하게 서 있다. 사탕수수의 달콤함 속에는 비탄의 눈물이 숨어 있다. 흑인 노예들의 눈물과 땀이 하얀 가루(설탕)로 바뀌어 백인 지배자들의 욕망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사탕수수는 한때 쿠바 산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트리니다드를 떠나 카마구에이로 가려면 넓고 긴 사탕수수 밭을 지나야 한다. 쇠락한 역사의 유품들이 도로 양편에 도열해 있는 듯하다. 가끔 들리는 평원의 휴게소 풍경이 남다르다. 카리브해의 겨울에도 따스한 바람이 불어온다. 쓰디쓴 에스프레소 커피에 다디단 사탕수수 한 조각을 준다. 쓴맛 뒤에 달달하게 씹는 이것이 인생이던가?
미로 같은 골목이 이어진 카마구에이
미로에서 도시를 침략하는 해적을 기다리듯 자전거 택시가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 늦은 점심을 먹고 골목을 여행하는 여행자는 골목만의 느린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미로의 골목이 기다리는 것은 여행자의 호기심이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을 따라 페달을 밟는 날씬한 쿠바 청년들의 근육질 다리를 감상하며 미로 같은 골목을 따라 골목을 누빈다.
1514년 쿠바 섬 북안에 건설된 최초의 도시 바라코아는 끊임없이 해적의 공격을 받은 뒤 1528년 내륙으로 이전했다. 카마구에이는 1514년 현재의 누에바라고 알려진 북쪽 해안 지역에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이끄는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이 세웠다. 이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쿠바에 세운 7개의 정착지 중 하나였다. 이 정착지는 1528년 카마구에이라는 이름의 타이노족 마을이 있는 곳으로 옮긴다. 이 도시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지역 책임자의 이름 또는 이 지역 특유의 나무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새로운 도시는 구불구불한 도로가 많다. 상당히 복잡하게 건설돼 막다른 길이나 분기한 도로가 많다. 그 결과 광장도 다양한 크기다. 마을을 침략자로부터 방어하기 쉽게 건설했다는 의견이 있다. 마을에서 나가는 길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비록 해적이 마을에 들어가는 것에 성공한다 해도 현지민이 그들에게 덫을 놓고 공격할 수 있게 한 설계상 의도라는 것이다. 옛 도시의 배치는 좁고 짧은 길이 이어져 다른 방향으로 도는 미로와 구조가 유사하다. 17세기에 헨리 모건이 도시를 불태운 후 이 건물은 공격자들이 도시 안에서 돌아다니기 힘들게 미로처럼 설계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지방 교회 옆에 살고 싶은 지역 주민을 피하기 위해 구부러진 길을 조성했다고 한다. 현지인들은 마을이 자연스럽게 들어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현상에 대해 결과론적 해석을 한다. 어쨌든 카마구에이의 명물은 미로 같은 골목길이다.
쿠바 최고 도예가와 독립운동가의 도시
카마구에이 거리는 1530년대부터 건설하기 시작해 19세기까지 스페인령 서인도 제도의 경제적 중심지였다. 그래서 17세기 교회를 포함한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 역사적인 거리는 2008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인력 자전거가 출발한 곳은 산 후안 데 디오스(San Juan de Dios) 교회가 있는 광장이다. 골목 사이 집들을 구경하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열심히 셔터를 누르다 보면 카르멘 광장에 도착한다. 현존 쿠바 최고 도예가의 한 명인 마르타 히메네스라는 화가의 작업실이 있는 곳이다. 그의 작업실에서 조각, 도자기, 그림 작품을 감상하고 광장에 나와 이 도시의 한적함 속에 동상이 돼 ‘수다를 떠는 여인들’이란 작품을 감상해도 좋다. 자전거는 다시 이곳을 출발해 골목을 다니면 마침 하교하는 어린 쿠바 학생을 볼 수 있다. 이그나시오 아그라몬테 공원은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딴 공원이다. 이곳에는 1950년께 제작한 그의 승마상이 있다. 대리석 벤치에는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이 눈에 띈다.
카마구에이는 스페인과의 10년 전쟁(1868~1878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그나시오 아그라몬테가 태어난 곳이다. 그는 1869년 첫 번째 쿠바 헌법 초안을 작성했으며, 나중에 카마구에이 기병대를 창설했다. 그는 1873년 5월11일 전투에서 사망했다. 스페인인은 반란군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공격할까 봐 두려워 시신을 불태운다. 그의 이름을 지닌 이그나시오 아그라몬테의 말 동상은 카마구에이의 상징이다.
카마구에이의 또 하나 상징은 질그릇 항아리다. 나중에 사용할 빗물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사용한다. 이 항아리는 도처에 널려 있는데 손만큼 작은 것도 있고 두 사람이 안에서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큰 것도 있다. 기념물로 쓰이기도 하고 실용적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소녀가 소유하고 있는 이 항아리의 물을 마시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면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쿠바의 삶을 표현한 기옌의 시
쿠바 민족시인 니콜라스 기옌도 이곳 출신이다. 니콜라스 기옌은 1903년 카마구에이에서 태어나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고 오랜 망명생활을 보냈다. 1960년대에는 쿠바 문인협회 회장을 맡았다. 체 게바라가 죽는 날까지 메고 다녔던 홀쭉한 배낭에는 69편의 시가 담긴 녹색노트가 있었다. 그 속에는 기엔의 시가 25편 실려 있었다. 파블로 네루다를 비롯해 세사르 바예호, 레온 펠리페 등의 시인들과 함께 그는 체 게바라의 필사 대상이었다. 야전에서 시의 세상을 펼치려던 체 게바라는 세상을 뜨겁게 사랑한 시인들의 시를 읽었다. 그의 작품은 종종 “쿠바의 삶에 대한 즉각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쿠바의 가난한 흑인의 언어와 리듬으로 쓴 그의 시는 차별받는 자의 외침이었다.
그는 대표적인 시 <너는 아는가?>에서 ‘공기는 빙글 돌아/ 나비와 유희하고 아무도 / 그걸 가질 수 없어, 아무도’라고 노래한다. 공기, 하늘, 비, 땅 등과 같은 소유할 수 없는 자연을 시어로 사용해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상황을 타파하고자 했다.
글 최치현 여행작가 maodeng@naver.com
사진 정윤주 여행작가 traveler_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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