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죽 솟은 집, 동화 같은 풍경… 일본 '알프스 마을'로 떠나요

입력 2018-06-17 14:48
여행의 향기

색다르게 즐기는 일본여행 (11) 기후현 ① 시라카와고



기후현은 일본의 중심부에 있다. 기후현의 북쪽은 ‘일본의 알프스’로 불리는 높은 산들이 밀집해 있고, 남쪽은 비옥한 평야로 이뤄져 있다. 기후현은 일본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곳이었다. 전국시대 일본의 통일을 위해 전쟁을 벌였던 이들이 일본을 지배하려면 반드시 기후를 지배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일본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투가 수도 없이 벌어졌다. 기후현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하쿠야마 기슭에 있는 시라카와고 마을이다. 마치 사람이 합장하고 있는 듯한 날렵한 모양의 지붕으로 일명 ‘합장(合掌)촌’으로도 불리는 시라카와고는 특히 겨울철 풍경이 눈부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합장촌의 절경 속으로 떠나보자.

글·사진=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

시라카와고 합장촌, 그 아름다운 풍경

일본 주부 지방을 여행하기로 계획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곳은 시라카와고다. 사진으로 본 하얀 눈이 덮인 산골 마을은 동화에나 나올 법한 풍경이었다. 그림 같은 마을에 마음이 사로잡혀 깊은 터널을 지나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렸다. 시라카와고는 기후현 히다 지방의 하쿠야마 기슭에 있다.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산속에 고립된 마을 같다.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마을에는 논이 펼쳐져 있으며, 마을 앞에는 강이 흐른다. 산골마을은 조용하고 아름답다.

기후현의 시라카와고 날씨는 5월 하순에도 서늘하다. 따뜻한 아이치현에서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넘어왔는데 15도 이상 차이 나는 쌀쌀한 기온에 몸이 움츠러든다. 피부에 닿는 바람도 차갑다. 눈앞에 펼쳐진 산 너머에는 하얀 고깔을 뒤집어쓴 듯한 만년설이 덮인 봉우리가 보인다. 여름을 코앞에 둔 5월에 눈 덮인 산을 만나니 ‘이곳이 알프스인가’라는 착각이 들었다.


‘시라카와 지역의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시라카와고에는 눈이 많이 온다. 최고 적설량이 3m나 된다. 마을 사람들은 겨울마다 내리는 폭설에 대비해 눈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독특한 지붕의 집을 지었다. 거대한 목재로 뼈대를 만들고 억새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올렸다. 눈이 흘러내릴 듯한 두껍고 가파른 경사의 지붕은 마치 스님들이 손바닥을 서로 맞대고 합장하는 듯한 모습과 비슷해 갓쇼즈쿠리라고 한다. 뾰족한 세모 모양의 지붕은 눈이 많이 쌓여도 눈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고, 쌓인 눈을 쉽게 치울 수 있도록 한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시라카와고에는 갓쇼즈쿠리 민가가 110여 채 모여 있다. 그래서 합장촌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라카와고 합장촌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독특한 마을이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오기마치 성터 전망대에 올랐다. 많은 사람이 전망대 앞에 병풍처럼 둘러서서 탄성을 지르고 있다. 포토존에는 차례를 기다리며 마을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동화 속 그림 같은 마을이 펼쳐진다. 사진으로 본 것 이상의 감동이 몰려온다. 독특한 지붕의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모내기철 물을 댄 논에는 마을의 모습이 비친다.

시라카와고 최고의 절경은 한겨울 눈 덮인 마을의 모습이지만 푸름이 가득한 5월의 풍경도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눈부셨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겨울의 눈 덮인 풍경을 보러 오리라 마음먹었다.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시라카와고는 독특한 지붕의 집들이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이 작은 산골마을까지 찾아오는 이유일 것이다.


쓰루라미 울적에 배경된 고즈넉한 풍경

숲 전체를 보았으니 숲으로 들어간다. 전망대를 내려와 시라카와고 마을 속을 걷는다. 마을은 주민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민가와 관광객을 위해 먹거리를 파는 가게, 기념품숍 같은 편의시설이 보인다.

갓쇼즈쿠리 촌락이지만 집 한 채 한 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양도 크기도 다르다. 에도시대 후반에 지어진 와다케는 시라카와고의 가장 큰 저택이다. 이 마을을 대표하는 민가라고 할 수 있다.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인 이 건물은 사람들에게 개방돼 입장료를 내고 내부를 관람한다. 1층에는 시라카와고의 전통 농기구와 주민들이 사용했던 생활 도구가 전시돼 있다. 가파른 계단으로 2층에 오르면 1960년 이전까지 이곳에서 양잠을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100여 명이 들어갈 정도로 넓은 집은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비단 상인이 대를 이어 살았다고 한다.

억새로 엮은 지붕은 세월이 지날수록 그 색이 짙어지는데, 30년에 한 번씩 지붕을 새로 교체한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폭설과 싸우면서 서로 도와 지붕을 엮어 올리고 논과 밭을 갈며 귀중한 유산을 지켜왔다. 그러나 산간지역이라 인구는 점점 감소하고 주민들의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해 더 이상 지붕을 잇지 못하는 집이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시골마을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의 상황과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마을에는 작은 절이 있다. 묘젠지는 200년 전 에도시대 후기에 세워진 시라카와고 전통 건축양식의 절이다. 시라카종루 지붕도 억새로 엮어 향토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5층 건물로 현재는 향토관으로 개방해 시라카와고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농기구, 조리 기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1층 한쪽에는 법당이 마련돼 있다. 2층과 3층에 오르면 창으로 마을의 풍경이 한눈에 내다보인다.

입구부터 거대한 삼나무에 둘러싸인 시라카와하치만 신사는 지역 축제인 도부로쿠 마쓰리의 주요 무대다. 도부로쿠는 우윳빛이 나는 일본 전통 술로 한국의 막걸리와 비슷하다. 기념품숍에서 도부로쿠 한 병을 사 마셔봤다. 막걸리보다는 뒷맛이 깔끔하고 맑다.

10월이 되면 도부로쿠 마쓰리가 열리는데, 마을의 무사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시작된 제례다. 마쓰리가 열릴 때에는 도부로쿠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신사 안에는 마쓰리 영상과 마쓰리 용품이 전시돼 있는 도부로쿠마쓰리노 관이 있다. 마쓰리를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마쓰리의 열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마쓰리의 열기만큼 시라카와하치만 신사에는 젊은 참배객이 많이 찾아온다. 미스터리 애니메이션 ‘쓰르라미 울 적에’ 배경이 됐기 때문이다. 시골마을 축제 기간에 정체불명의 괴사와 실종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애니메이션 ‘쓰르라미 울 적에’는 신사뿐 아니라 시라카와고 마을 전체가 배경이 된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회색빛 도리이가 스산해 보였던 게 그런 이유일까. 도리이를 비롯해 신사의 본당까지도 애니메이션에 실사처럼 등장하니 신사에는 애니메이션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소원을 적는 에마에도 애니메이션의 장면이 많이 그려져 있다. 마을과 신사를 돌아보며 풍경과 ‘쓰르라미 울 적에’의 장면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전통가옥 박물관, 갓쇼즈쿠리 민가엔

마을을 둘러보고 전통가옥 박물관, 갓쇼즈쿠리 민가엔으로 향했다. 마을에서 박물관에 가려면 마을 앞에 흐르는 쇼가와를 가로지르는 데아이바시를 건너야 한다. 데아이바시는 ‘만남의 다리’라는 뜻이다. 돌다리인데도 앞서가는 사람이 발걸음에 힘을 주면 다리가 약간 흔들리는 것 같다. 마을을 잇는 다리 자체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갓쇼즈쿠리 민가엔은 갓쇼즈쿠리 가옥이 이전돼 보존되고 있는 야외박물관이다. 기후현 중요문화재 지정건물 9채를 포함해 25채의 가옥을 보존하고 있다. 하나의 촌락을 이루는 듯한 갓쇼즈쿠리 민가엔에는 신사, 절, 물레방아, 연못, 숯을 굽는 곳, 마구간 등 일상의 흔적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각각의 가옥마다 전시하는 것들이 조금씩 다르다. 농기구가 전시된 가옥도 있고, 서양식 가구들이 전시된 곳도 있다.


차(茶)를 무료로 마시고 가라는 팻말이 붙은 가옥에 들어서니 거실 한가운데 커다란 화롯가가 마련돼 있다. ‘이로리’라고 하는 일본 전통 난방장치다. 방바닥의 일부를 네모나게 잘라내고 그 안에 재를 깔아 불을 피운다. 화롯가에 줄을 매달아 물고기 상과 검게 그을린 주전자를 걸어 놓은 모습이 운치 있다.

이로리 위에 물고기 장식물을 매달아 놓은 것은 물에 사는 물고기가 화재를 막아준다는 의미라고 한다. 화롯가 잿더미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조금 매캐하지만 연기가 가옥의 나무를 썩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을 한다고 해서 사시사철 불을 피운다. 깊은 산 속이라도 여름에는 더울 텐데, 더운 여름에도 불을 피워야 하는 것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일 것이다.

시라카와고는 우리에게는 그림 같은 마을이지만 주민에게는 삶과 죽음의 터전이다. 혹독하게 내리는 눈과 고립된 자연속에서 굴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낸 문화가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이 돼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마을이 됐다. 아름다운 풍경도 감동이지만 그 이면에 힘들었던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지혜가 녹아 있어 더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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