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동맹 흔들기'서 얻는 교훈…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입력 2018-06-15 17:48
수정 2018-09-13 00:01
유승호 기자의 Global insight


[ 유승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이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을 흔들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캐나다엔 철강, 알루미늄 수출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동시에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엔 급작스럽게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통보했고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도 거론했다.

“트럼프의 퇴행이 북한 핵이나 중국과 러시아의 야심보다 세계 평화에 더 큰 위협”(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필립 스티븐스)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에 불안감을 주고 있다.

동맹국으로선 당혹스럽지만 미국과 동맹국들의 국방비 부담 내역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괜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트위터에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거의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다른 나라들은 일부만 내고 웃고 있다”고 썼다.

이어 “우리는 엄청난 재정 손실을 감수하면서 유럽을 보호하는데 무역에선 유럽에 얻어맞고 있다”고 했다. 유럽 국가들이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면서 경제적 과실만 취하는 이른바 ‘평화 배당금(peace dividend)’을 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NATO 회원국 전체 국방 예산 중 미국의 비중은 70%에 이른다. NATO는 회원국들에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비로 쓸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지난해 이 기준을 충족한 나라는 미국(3.6%) 영국(2.1%) 그리스(2.3%) 에스토니아(2.1%) 등 4개국뿐이었다.

유럽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독일은 지난해 GDP의 1.2%만을 국방비로 지출했다. 프랑스의 GDP 대비 국방비 비율도 1.8%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과 프랑스를 향해 국방 예산을 GDP의 2% 이상으로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미국과 캐나다의 오랜 동맹관계를 감안하면 국가안보를 이유로 캐나다에 관세를 매긴 것은 모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네 돈은 쓰지 않으면서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나라가 과연 동맹이냐’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캐나다의 지난해 GDP 대비 국방 예산은 1.3%에 불과했다.

한국은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경제 규모 대비 국방비를 많이 쓰는 편이다. 지난해 GDP의 2.3%를 국방 예산으로 지출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 등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미국의 일방적인 한·미 연합훈련 중단 결정을 보면서 북핵 등 안보 위협에 우리의 힘만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국방에 많은 돈을 투입하는 만큼 복지 등 다른 분야에 쓸 수 있는 예산이 제약받는데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GDP 대비 국방 예산 비율을 1%포인트 낮추면 17조원가량이 확보된다. 전 국민에게 1인당 연 30만원씩 지급할 수 있는 큰 금액이다.

하지만 복지가 안보에 우선할 순 없다는 사실을 유럽 국가들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다. 스웨덴은 GDP의 겨우 1%를 국방 예산으로 쓰고 있다. 복지 예산 비율은 30% 가까이 된다. 그런 스웨덴이 얼마 전 국민에게 전시 대응 매뉴얼을 나눠줬다.

국방비를 대폭 늘리기로 했고 2010년 폐지한 징병제도 올 들어 되살렸다. 여성도 징집 대상이다. 러시아 전투기가 스웨덴 영해에 접근하고 스웨덴 근해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하는 등 안보 위협이 커지고 있어서다.

LA타임스는 지난달 “독일군 주력 전투기 유로파이터 128대 중 실전에 투입될 준비가 돼 있는 것은 39대뿐”이라며 “전투기는 고장났고, 헬리콥터는 이륙하지 못하며, 탱크는 놀고 있는 게 병든 독일군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해 온 유럽 국가들의 국방 실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흔들기에서 얻어야 하는 교훈은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