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韓·美 훈련 중단
"함께 훈련하지 않으면 같이 싸울 수 없다"
美 내부서도 논란 커져
한미훈련 중단에 미군 철수까지 거론…'트럼프 딜'에 뒤통수 맞은 한국
비핵화도 '美 우선주의'
美 '방어 훈련'이라더니…주변국과는 상의 않고 결정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등 주요 연합훈련 중단 가능성
핵담판 성과물도 모두 美이익 초점…韓 부담만 커질듯
[ 정인설 기자 ]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의 불똥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한·미 동맹 균열이라는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은 그동안 공언하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대신 느닷없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폭탄 발언을 내놨다. 이 과정에서 동북아시아 지역의 전쟁 억지를 위한 한·미 간 노력이 전쟁연습을 뜻하는 ‘워 게임’으로 둔갑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고받은 내용은 하나같이 미국에 유리하고 한국엔 부담이거나 오히려 손실로 다가올 공산이 크다. 외교 전문가들은 향후 미·북 협상에서도 한·미 동맹이 뒷전으로 밀리고, 미국 이익만 우선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비핵화로 진행될 것으로 우려했다.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에 대한 중대한 양보이자 위험한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한·미가 함께 훈련하지 않으면 같이 싸울 수 없다”며 “주한미군은 북한과의 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미 동맹은 ‘비용 절감’을 위한 카드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로 미국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뿐이다.
지난 12일 열린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은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교환하는 자리였다.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비핵화를 약속받고 반대급부로 북한의 체제 안전을 약속하는 협상이었다. 결과적으로 비핵화 합의는 모호했지만 체제보장 조치는 구체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겉으로 보면 미국이 손해 보는 장사를 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덜컥 합의서에 서명하고 “매우 좋다”를 연발했다.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손해 볼 것 없는 미국
미국은 합의서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못 박지 않고도 북한에 많은 걸 내줬다. 합의문에 비핵화는 추상적으로 담은 반면 ‘안전 보장’이란 문구를 명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했다. 대부분 외신이 “이번 회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승리”라고 평가한 이유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단한 협상을 했다”고 자부했다. 미국에는 이익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한·미 연합훈련과 주한미군은 한·미 동맹의 상징으로 최후의 보루지만 미국으로선 ‘돈 쓰는 하마’다. 미국인이 내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선 훈련을 줄이고 주한미군 규모는 감축해야 한다.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 말처럼 한국이 더 많은 돈을 내게 해야 한다. 결국 한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요구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받아들이고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사일 시험장 폐기도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조치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으로부터 이미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파괴하고 있다는 말을 (합의문) 서명 이후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에서 나온 비핵화 조치 중 유일하게 구체적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대미용이다. 모두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장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 위협이 되는 중단거리 미사일이나 핵탄두, 핵물질은 협상 후순위로 밀렸다. 공동합의문 중 거의 유일하게 구체적 내용인 미국인 송환과 전쟁포로 유해 발굴도 미국이 요구해온 내용이다.
◆한국이 부담할 비용만 늘어나나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초기 성과물 회수에 큰 관심을 가졌지만 비용 책임에선 빠져나갔다. 대신 부담 주체로 한국과 일본을 지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에 소요되는 비용은 누가 지급하느냐’는 질문에 “한국과 일본이 많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돕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다른 곳에서 많은 대가를 치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과 전혀 상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에 미리 알리지 않고 북한 지도자에게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얘기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마이클 그린 국제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이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당장 8월로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비롯한 주요 한·미 연합훈련은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미 군당국은 긴급 협의 채널을 가동해 연합훈련 계획을 변경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남북한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이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식 비핵화’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한·미 연합훈련은 한국의 대북 방어에서 보루와 같은 한·미 동맹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는 북한이 실제 핵무기를 폐기도 하기 전에 미국이 양보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쌍중단’(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 요구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훈련을 중단할지를 두고서도 논란이 됐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인 코리 가드너 공화당 의원은 이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정기적인 준비 태세에 해당하는 한·미 연합훈련은 계속될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이어 “특정 훈련은 계속될 것”이라며 “그것(워게임 중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명확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