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자체 큰 의미" vs "핵폐기 로드맵 빠져… 이행의지 관건"

입력 2018-06-12 17:51
트럼프-김정은 세기의 담판
전문가·외신 반응

전문가가 본 미·북 정상회담

"CVID 명문화 문구 없어
포괄적 합의는 신뢰 못해"

"김정은 설득에 실패한 것
북한이 1차 협상 승리자"

"70년 만의 역사적 만남
평화협정체제 약속은 의미"


[ 김대훈/박상용 기자 ]
싱가포르에서 12일 열린 미·북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외교 전문가들은 “세기의 만남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구체적인 각론으로 들어가면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절하했다. 미국에서 그동안 주장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가 명문화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됐다. 일부 전문가는 “북한의 입장이 완강했던 것 같다(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며 북한이 1차 협상의 ‘승리자’라고 했다. 다만 미국과 북한이 후속 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비핵화 이행 방안을 도출할 것이라는 데는 대체적으로 의견을 같이했다.

“첫 단추” vs “실망스러운 회담”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그동안 (미국이) CVID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번(합의)에 빠졌다”며 “협상의 전문가라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보게 될 정도로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는 “우선 포괄적으로 합의하고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겠지만 과거 제네바합의, 9·19 공동성명 등 선례를 봤을 때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첫 단추’인 만큼 더 지켜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첫 (미·북) 정상회담인 만큼 포괄적 합의 형태일 수밖에 없었다”며 “새로운 미·북 관계 구축, 항구적 평화 체제, 완전한 비핵화라는 큰 틀에서의 방향만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양측이) 약속과 의지를 지속적으로 재확인하는 이행 의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정상회담이 ‘여러 차례 열릴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볼 때 시기별로 성과를 내면서 업적으로 삼으려는 것 같다”고 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합의문에 대해 “세기적인 담판이 아니라 한마디로 사기적인 담판 같았다”며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를 아젠다로 삼았는데 최소한의 CVID가 합의문에 담기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전쟁포로와 실종자 유해 송환 문제는 평화 및 비핵화가 아니라 인도주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70년 만의 역사적 미·북 정상의 만남 자체가 의미있고, 한반도의 분단을 군사적이 아니라 외교적으로 풀자는 합의는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합의 내용은 9·19 공동성명 및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에 크게 못 미친다”며 “총론적 합의를 바탕으로 북한 비핵화를 어떻게 진전시킬지 지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CVID 이행을 위한 타임테이블(일정표)이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11월 미국 중간선거 전까지 원하는 수준의 비핵화 결과를 내기 위해 힘든 협상을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남 교수는 “2, 3차 미·북 정상회담을 한들 근본적인 핵 인식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어떻게 하더라도 양국은 장기전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설득에 실패” 분석도

박휘락 원장은 “(한국과 미국이) 김정은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회담”이라며 “(합의문에) 아무 내용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입장이 굉장히 완강했던 것 같다”며 “트럼프는 결국 이번에 해결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기약한 것 같다”고 했다. 박 원장은 “북한과의 회담은 ‘알파고’와의 싸움에 비유할 수 있다”며 “북한은 장기적으로 전략적 그림을 그리고 나오는 데 비해 한국과 미국은 정치인의 개인적인 영달과 직관이 (회담)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성묵 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포괄적 합의만 있을 뿐 북한을 핵폐기로 이끌 로드맵이 없다”며 “앞으로의 협상 과정에서 어떻게 비핵화와 체제보장 문제를 풀지 큰 과제가 던져졌다”고 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것”이라면서도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애초에 합의문에 진전된 디테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 게 맞았다”며 “서로가 욕심을 내지 않고, 긴장과 적대를 깨뜨리면서, 불신시대를 종결하는 첫발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전쟁포로와 전쟁실종자 유해 송환 등의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미·북 간 신뢰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며 “합의문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북한이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폐쇄하기로 약속했고 조만간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김대훈/박상용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