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개봉 영화 '허스토리'서 주연 맡은 김희애
[ 유재혁 기자 ]
관부 재판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사법부로부터 처음으로 일본 정부의 일부 잘못을 판결받은 사건이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10명의 원고단과 13명의 변호인이 시모노세키(下關·하관)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 법원에서 23번의 재판을 받은 끝에 쟁취한 결실이다. 하관의 첫 글자와 부산의 끝말을 따서 ‘관부’로 불린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는 관부 재판을 옮긴 실화 영화다. 원고단 단장으로 법정 투쟁을 이끈 실존인물 문정숙 씨를 연기한 김희애(51·사진)는 기존의 우아한 이미지를 벗고 당찬 여사장으로 변신했다. 12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김희애를 만났다.
“힘없고 나약한 할머니들이 일본 재판관 앞에서 당당히 맞서 카타르시스를 주는 여성 법정 드라마예요. 여성 간 우정이란 편안한 요소도 있고요. 여배우로서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극 중 부산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던 문정숙을 연기한 김희애는 우연한 기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픈 사연을 접하고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집까지 팔아 비용을 대고 법정에서는 할머니들의 증언을 일본어로 통역한다.
“제 연기 인생의 도전이었어요.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를 연기하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발연기’를 하면 어떡하나 중압감이 컸죠. 기본적인 사투리 연기가 안 되면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공감을 못 얻을 것 같았어요. 부산 사투리 억양을 대부분 다 외웠어요. 일본어 연기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에는 1주일 동안 한 문장도 외우지 못했죠. 꿈에서도 일본어 연기가 나올 정도로 일본어 문장과 억양을 반복해 외웠어요.”
김희애는 여장부 스타일의 문정숙을 연기하기 위해 외모에도 변화를 줬다. 쇼트커트를 하고, 얼굴을 반쯤 가린 커다란 안경을 썼다. 살도 5㎏ 정도 찌웠다. 함께 출연한 김해숙이 김희애를 몰라봤을 정도였다고 한다.
“여배우 하면 예쁘고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런 편견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연기할 수 있어 배우로서 편안하고 행복했어요.”
그는 우아한 이미지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저는 그렇지 않아요. 대학교 1학년, 고3짜리 두 아들을 둔 엄마예요. 아침 일찍 일어나 제 일을 하고 장을 직접 봐서 음식도 하죠. 꾸밀 시간이 없어서 온종일 운동복을 입고 돌아다녀요. 평소 제 모습을 생각하면 그런 평가가 감사하기도 하지만 죄송할 따름입니다.”
김희애는 겸손한 자세로 어떤 배역이든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저는 보통 사람보다 여러모로 모자란 점이 많아요. 그래서 남들보다 세 배, 네 배는 노력하죠. 앞으로 작은 역할이라도 소품처럼 작품을 빛낼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허스토리’에는 김희애 외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김선영, 김준한, 이유영, 이지하 등이 가세해 슬픈 역사의 한 토막을 들려준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