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비행기 타고 싱가포르 온 김정은… '체면'보다 '안전' 택했다

입력 2018-06-10 17:59
12일 美·北 정상회담

김정은, 中최고위급 전용기 에어차이나 임차

보안 위해 비행기 3대 띄워

北 대표단 100여명 예상
식재료도 가져왔을 가능성
벤츠 방탄차량 수송기로 공수


[ 주용석/박수진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오후 2시36분(한국시간 오후 3시36분, 이하 현지시간)께 에어차이나(중국국제항공) 소속 보잉 747항공기를 타고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북한은 김정은 전용기 ‘참매1호’를 보유하고 있지만 오래된 기종인 데다 장거리 운항 경험이 거의 없는 점을 고려해 중국 비행기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이 탑승한 에어차이나의 보잉 747항공기는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최고위급 인사들도 이용하는 비행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이날 에어차이나 항공기 외에 북한 ‘일류신(IL)-76’ 수송기와 참매1호까지 모두 3대의 비행기를 싱가포르를 향해 띄웠다.


◆김정은 중국 비행기 이용

정부 소식통과 항공기 경로추적 사이트 ‘플레이트 레이다24’에 따르면 에어차이나 항공기는 이날 오전 4시18분 베이징 서우두공항을 출발해 오전 6시20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이어 김정은 등 북한 협상팀을 태우고 오전 8시30분께 순안공항을 이륙했다. 출발 당시 편명은 CA122편, 목적지는 중국 베이징이었다.

하지만 베이징 인근 상공에서 갑자기 편명을 CA61로 바꾼 뒤 싱가포르로 방향을 틀었다. 비행 도중 편명 변경은 극히 이례적이다. 북한과 중국 당국이 보안을 위해 ‘연막작전’을 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항공기는 오후 2시36분께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에어차이나 항공기(에어버스 A330 기종)는 전날에도 북한 선발대를 태우고 평양에서 출발해 창이공항에 착륙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은이 에어차이나 비행기를 이용하기 전 일종의 ‘시험비행’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이 에어차이나를 탄 것은 ‘체면’보다 ‘안전’을 택한 행보로 풀이된다. 김정은 전용기인 참매1호는 옛 소련 시절 제작된 ‘일류신(IL)-62M’을 개조한 비행기다. 제원상 비행가능 거리는 1만㎞로 4700㎞ 거리인 싱가포르까지 재급유 없이 비행할 수 있다. 하지만 1995년 단종된 노후 기종인 데다 지금까지 이 정도의 장거리 비행을 한 적이 없어 안전 문제가 제기되곤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명운을 건 담판에 나서면서 다른 나라 비행기를 빌려 탄 북한으로선 체면을 구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효과를 얻었다.

◆‘007 작전’ 같은 김정은 이동

북한의 이날 움직임은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에어차이나 항공기의 편명과 목적지를 비행 도중 바꿨을 뿐만 아니라 에어차이나 항공기와 함께 참매1호, 일류신-76 수송기까지 모두 3대의 항공기를 띄우면서 김정은의 동선을 예측하기 어렵게 했다.

일류신-76이 이날 새벽 가장 먼저 평양 순안공항을 이륙했다. 이어 오전 8시30분 에어차이나 항공기가 출발했고, 1시간 뒤인 오전 9시30분께 참매1호가 날아 올랐다. 참매1호는 별도의 항공편명 없이 비행하다 중국 허베이(河北) 지역을 지난 뒤에야 항로가 표시됐고 이후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싱가포르로 향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이 창이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에어차이나에 탔는지, 참매1호에 탔는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참매1호는 김정은의 동선을 감추기 위한 눈속임용이 됐다.

일류신-76 수송기는 김정은의 전용 방탄차인 ‘메르세데스-벤츠 S600풀만 가드’를 실어나른것으로 파악됐다. 이 방탄차는 자동소총과 수류탄, 화염방사기, 화염병, 화생방 공격 등을 막아낼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됐다. 김정은의 건강 정보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북한이 이동식 화장실을 비행기에 실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 대표단 규모는 근접 경호인력을 포함해 100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북한은 김정은의 식재료도 북한에서 공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용석 기자/싱가포르=박수진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