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제도화' 뛰어든 해외, 기준조차 없는 한국

입력 2018-06-10 07:00
수정 2018-06-10 19:59
"블록체인-가상화폐 분리불가…'베니스의 상인'과 유사"
"정부는 규제라도 해달라…무플보다 악플이 낫다" 촉구


국내 ICO(가상화폐 공개) 전면 금지,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경고, 투자용 은행계좌 개설 정지… 지난 1년간 정부가 내놓은 암호화폐 시장 정책이다. 규제 일변도로 요약된다.

자칫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블록체인 기술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자 정부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분리 육성 방침을 제시했다. 하지만 올 초 암호화폐 논란이 일단락된 이후 수개월간 관련 정책은 전무하다. 당국이 손을 놓았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10일 관련 학계에 따르면, 당국이 수세적으로 접근해 성장 궤도를 왜곡한 만큼 기초개념부터 정확히 정립하고 정책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분리’를 표방한 정부의 기본 방향을 되짚어봐야 한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방침이 잘못 됐다”고 입을 모았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이제 정부만 빼놓고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분리될 수 없다’는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이 논란을 ‘베니스의 상인’에 비유한 바 있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분리가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블록체인이 죽는다”며 “블록체인을 암호화폐에서 떼어내라는 건 피를 흘리지 않고 심장을 베어 가라는 요구와 같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퍼블릭(공공) 블록체인은 현실적으로 암호화폐가 아닌 다른 보상을 제공하기 어렵다”면서 “암호화폐에 대한 불신이 있을 수 있으나 혁명기의 일반적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인터넷 초창기 아마존, 구글 같은 기업이 등락을 거듭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경제의 교환수단이므로 분리할 수 없는 생태계며, 암호화폐 투기 논란도 긴 호흡으로 보면 정상적인 정착 과정의 하나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정부가 규제라도 해달라는 주문까지 나온다. “무플보다 차라리 악플이 낫다고 하잖아요.”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관련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산업을 일구는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와 같은 ‘공백’ 상태에서는 시도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부연했다.

반면 해외에서는 최근 암호화폐의 제도화 움직임이 눈에 띈다. 골드만삭스가 투자한 암호화폐 스타트업 써클(Circle)은 정식 은행 자격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최대 규모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도 증권사 등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올 3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한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암호화폐의 제도권 진입 노력을 통해 블록체인 기술까지 발전시키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 박성준 센터장은 “블록체인 진흥이 먼저다. 문제가 있다면 거기에 맞는 규제를 하면 된다”며 “국내에서도 법무부가 아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무 부처가 되어 빠르게 관련 정책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김산하 객원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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