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채용이지만…프라이버시가 중요해"
"필리핀 가정부 문의 20% 늘어"
평창·한남동 등 고급주택가 선호
영어 사용해 소통에 문제 없고
한국말 몰라 사생활 보호 가능
은행 대여금고 중산층에도 인기
4대 시중銀 약 40만개 운영
비밀보호 위해 CCTV 없어
별장 내 개인금고 설치도 늘어
[ 조아란 기자 ] 조양호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필리핀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논란 이후 필리핀 가정부를 찾는 사람이 오히려 늘고 있다. 대부분 불법취업이라 위험부담이 높은 데다 음식 등 문화 차이도 크지만 그런 불편함보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더 중요시하는 세태를 반영한 현상으로 풀이된다.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 집안 비밀이 새나갈 걱정이 낮은 데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점이 인기의 배경으로 꼽힌다.
◆“한진 사태 이후 찾는 사람 더 늘어”
6일 가사도우미 소개업체 등에 따르면 한진 사태 이후 필리핀 가정부를 찾는 문의가 오히려 늘었다. 한 소개업체 관계자는 “고급 주택가인 서울의 평창동, 한남동 일대를 중심으로 필리핀 가정부 구인 문의가 작년보다 20~30%가량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국은 가정부 비자를 발급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필리핀 가정부는 단기방문비자(C-3)로 일하는 불법체류자다. 이들을 고용하는 것도 당연히 불법이다. 그런데도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시대 변화를 반영한 현상이다.
변호사, 의사 등 입주 가정부를 쓰는 전문직 맞벌이 부부 등은 한국인 가정부를 주로 찾는다. 60만~70만원이 더 비싸지만 음식솜씨가 낫고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어서다. 하지만 자녀가 장성한 기업인 등 자산가 집안에서 오히려 필리핀 가정부 선호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소개업체 대표는 “집안일을 외부에 노출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필리핀 가정부를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리핀 가정부는 보통 하루 12시간, 주 6일 일하고 150만원대 월급을 받는다. 영어가 공용어라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는 점도 다른 국가 출신에 비해 필리핀 가정부가 각광받는 한 요인이다.
◆대여 금고, 개인 금고 수요도 급증
프라이버시를 우선시하는 현상은 은행 대여금고의 인기에서도 드러난다. 대여금고는 본인만 사용할 수 있는 금고로 은행에서 일정 기간 빌려 쓰는 방식이다. 은행 VIP의 전유물이었지만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최근 중산층이 수요자로 가세했다. 국민(11만2090개) 신한(13만4000개) 우리(8만7466개) 하나(5만 5347개) 등 4대 시중은행에서만 38만9000여 개의 대여금고가 운영되고 있다. 농협 SC제일 등을 합쳐 전국에 55만 개가량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주인이 방문하면 은행 직원은 금고실까지만 동행한다. 문을 열어준 뒤 자리를 피해주기 때문에 비밀보장이 가능하다. 대부분 은행은 대여금고실에 폐쇄회로TV(CCTV)도 달지 않는다. 다이아몬드 반지 등 패물, 금괴, 고서화, 고가 시계 등의 실물자산과 각종 서류·계약서 등을 주로 보관한다는 게 은행 관계자의 귀띔이다.
집안이나 사무실에 두고 비밀스럽게 쓰는 개인금고 판매량도 해마다 50%씩 늘어 연 300억~400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집을 재설계하거나 별장을 지을 때 내화·공조시스템을 갖춘 위장금고 설치 문의가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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