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세계 최강' 구르카 용병

입력 2018-06-06 17:44
수정 2018-06-07 14:15
고두현 논설위원


구르카(Gurkha)는 네팔 중서부 산악지대에 사는 몽골계 소수 부족이다. 1814년 영국군 침공에 맞서 끝까지 저항한 전사의 후예이기도 하다. 당시 최신 무기를 동원한 영국군은 ‘쿠크리(khukri)’라는 구부러진 단검으로 대적한 이들의 용맹에 혀를 내둘렀다. 전쟁이 끝난 뒤 그 전투력을 높이 사 용병으로 고용했다.

구르카족은 이후 영국 용병으로 세계 곳곳의 전장을 누비며 ‘백병전 1인자’로 이름을 떨쳤다. 전투력이 워낙 강한 데다 고산지대 출신이어서 폐활량 등 신체 조건도 뛰어났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중세 스위스, 근세 독일 용병에 이어 현대의 최강 용병대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것은 2차 세계대전 때다. 혼자서 일본군 10명을 무찌르며 벙커 두 개를 탈환하거나, 오른손을 잃은 상태에서 왼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며 200명의 적을 막아낸 일화가 유명하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때는 “구르카 부대가 온다”는 소문만 듣고 아르헨티나군이 도망칠 정도였다.

구르카 용병은 첨단 장비 외에 200여 년 전 자신들의 용맹을 알렸던 쿠크리를 반드시 지니고 다닌다. 군복무를 마치고 귀향하던 구르카족이 기차 안에서 맞닥뜨린 떼강도 40명을 쿠크리 하나로 평정한 얘기가 자주 거론된다.

구르카 용병은 영국만 아니라 인도에도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경찰로 활약하고 있다. 영국의 구르카 용병은 약 3000명으로 육군 전투병의 10%에 해당한다. 한 해 뽑는 인원은 200명. 급여는 영국군과 비슷하다. 2015년 기준 일병이 연 1만8000파운드(약 2600만원)로, 제대 후 네팔에서 상류층으로 지낼 수 있는 금액이다.

지원경쟁률은 50~100 대 1에 이른다. 지역 예선에서 기본 체력 테스트를 거쳐 2~3배수를 뽑고 모병소에서 최종 인원을 선발한다. 체력 테스트의 하이라이트는 ‘도코(전통 바구니) 레이스’다. 25㎏의 돌을 채운 도코를 머리에 매달고 가파른 산길 6㎞를 30분대에 주파해야 합격권에 든다.

싱가포르 경찰은 영국군 선발에서 떨어진 차순위자들을 주로 뽑는다. 선발 인원은 연간 300명 안팎이다. 국제전략연구소(IISS)에 따르면 싱가포르 경찰 병력의 15%인 1800여 명이 구르카족이다. 이들이 오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미·북 정상회담의 경호·보안 작전에 대거 투입된다고 한다.

구르카 용병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6·25 때 참전해 지평리전투 등에서 맹위를 떨쳤다. 정전협정 후 유엔사령부 소속으로 용산에 남은 병력도 있다. 엄청나게 매운 빨간고추를 소스로 넣은 카레라이스를 주식(主食)으로 삼는 이들의 모습은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으로는 가난한 조국을 위한 ‘젊은 피’의 몸부림이 애잔하기도 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