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 토스터에 50만원 헤어드라이어까지
"취향·실용성 맞으면 얼마든지 상관 없어"
# 10월 말 결혼하는 이동규(34)씨는 혼수 가전으로 250L 용량의 39만원짜리 소형 냉장고를 구입했다. 대부분의 끼니를 배달이나 외식으로 해결하는 그의 생활패턴을 반영한 결과다. 반면 헤어드라이어와 선풍기에는 50만원씩을 투자했다. 무선청소기 가격도 100만원에 달했다. 이씨는 "맞벌이를 하다보니 음식을 거의 안 해 먹어 냉장고는 기본 기능에 충실한 실속형 제품으로 선택했다"며 "자주 쓰는 소형 가전은 조금 비싸더라도 효과가 확실한 고가형으로 구입했다"고 했다.
생활 가전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5일 전자제품 유통업체들의 1분기 가전 판매 현황을 종합한 결과, TV·냉장고·세탁기 등 대형 가전의 판매는 전년과 비슷하거나 소폭 증가한 반면 의류관리기·공기청정기·무선청소기·선풍기·헤어드라이어의 판매는 대폭 증가했다. 의류관리기와 건조기는 200~1000% 성장했고, 공기청정기와 무선청소기 판매량도 100~300% 가량 늘었다. 선풍기와 헤어드라이어의 경우 판매량은 비슷했지만 50만원 이상 고가형 제품은 200% 확대됐다.
이같은 현상은 맞벌이 가구와 1인 가구가 늘어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3~4인 가구와 비교해 주거 면적이 좁아지면서 대형 가전은 소형·실속화됐고 소형 가전은 고가형으로 탈바꿈했다. 배달이나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향도 한 몫했다. 닐슨코리아가 조사한 '한국인의 식생활'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일주일에 2회 간편식을 먹고 1회 배달 음식을 이용했다.
코인빨래방 등 편의시설이 늘어난 것도 변화를 부추겼다. 코인빨래방은 1인 가구가 증가에 힘입어 연평균 30% 성장세를 유지하는데 반해 전체 세탁기 판매량은 제자리 걸음이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TV 성장을 방해하는 것과 같은 결과"라며 "생활 습관이 변하면서 소비 트렌드도 변화했다"고 했다.
신혼부부 같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들은 개인 취향과 실용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취향에 맞는 디자인이거나 집안일과 같은 비생산적인 활동을 덜어 줄 수 있다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의미다.
가전업체들은 변화하는 소비 패턴에 맞춰 대응하고 있다. 평균 판매가격의 10배에 달하는 50만원대 헤어드라이어·선풍기와 100만원짜리 무선청소기가 대표적이다. 150만원짜리 의류관리기, 30만원대 토스터, 레트로 디자인 정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은 '필수 가전'이라는 말 대신 '맞춤 가전'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며 "작은 사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도 가전 트렌드 변화에 한 몫했다"고 했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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