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풀뿌리 민주주의
한인 출신으로 英 지방선거 당선된 하재성 한인회장
선거자금 대부분은 당원·지지자들 후원금
지역 맞춤형 공약으로 승부
[ 박종필 기자 ] “평당원 의견이 당 전체의 공약으로 채택되고 실현되는 과정을 한번 겪어보면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국 정치의 매력입니다.”
하재성 재영한인총연합회 회장(58·사진)은 지난달 30일 런던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달 3일 치러진 영국 지방선거에서 제3당인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런던시 킹스턴 자치구 베벌리 워드에 출마해 전체의 16%인 1787표를 얻어 카운슬러(지방의원)에 당선됐다.
워드는 영국 지방자치단체 구성단위로 한국의 구(區)에 해당한다. 하지만 영국은 한국처럼 광역(시·도) 의회가 별도로 없는 단일 자치구 의회여서 한국 구의원보다 중량감이 크다.
하 회장은 “임기가 시작된 지난달 8일부터 지금까지 한 달도 채 안 됐지만 쏟아지는 민원과 정책자료로 압박을 많이 받는다”며 “철저히 자기 시간과 노력을 들여 봉사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후보자가 15% 이상 득표하면 당락에 관계없이 선거비용을 선거관리위원회가 국고로 보전해주지만, 영국은 당원과 지지자의 후원금이 주된 자금원”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선거에서 선거구민 1인당 책정된 법정 선거비용은 200원 정도다. 홍보물 인쇄와 우편물 배송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다. 그는 “영국 선거운동이 집집마다 방문해 유권자를 직접 접촉하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 회장은 “공약을 만드는 일도 간단치 않다”며 “지구당에서 취합된 주민 의견을 받아들여 킹스턴시를 위한 공약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구 몰입을 유발하는 과도한 개발을 중지하고 초등학교를 3곳 이상 건립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지역구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는데도 학교 등 기반 시설이 뒤따라 주지 않는 문제점을 공약으로 채택한 것이 적중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평당원들이 내는 의견이 후보 공약이 되고 정당의 당론에 채택되며, 집권당이 되면 국가 시책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영국인들이 정치에 발 벗고 나서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 회장은 공천 과정에 대해 “평당원들이 후보 선발회의를 소집해 각 후보의 정견을 듣고 토론한 뒤 투표로 카운슬러 후보자 3명을 선정한다”며 “중앙당의 전략·하향식 공천이 많은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런던=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