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폐기 대가 수백兆 필요한데… 한국이 70% 이상 떠안을 수도

입력 2018-06-04 17:38
트럼프가 청구서 내밀면 한국은 얼마나 부담하나

1995년 신포 경수로 건설 때
한국 70%·일본 22% 비용 부담
정부 11억弗 지원했다 전액 손실

미·북 회담서 비핵화 합의 땐
보상 지원 규모·범위 더 커질 듯

"트럼프, 비핵화 길 닦을테니
뒷감당은 文정부가 하라는 격"


[ 김채연/이미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북한 비핵화 대가로 경제적 보상을 할 주체로 한국과 중국, 일본을 지목하면서 비핵화 비용 문제가 변수로 떠올랐다. 북한 비핵화 비용이 최대 2100조원이 넘을 것이란 추산이 나오는 가운데 부담 비율을 둘러싸고 한·중·일 3국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때처럼 대북 지원 대부분을 한국이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부담 비율 제일 클 듯

각종 연구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 비핵화 달성까지 10년을 기준으로 최소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최근 영국 유라이즌 캐피털 연구소와 공동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북한 핵 포기 대가로 향후 10년간 2조달러(약 2100조원)의 비용이 추산된다고 예상했다.

북한 비핵화 비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핵시설 폐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반출 비용, 이에 따른 경수로 건설 지원 등 직·간접 비용이 있고 비핵화 대가로 제공할 경제적 지원액이 있다.

1차 북핵위기를 봉합한 제네바 합의 사례와 비교해보면 한국은 비핵화 대가로 북한에 제공하기로 했던 신포 경수로 건설 비용의 70%를 부담했다. 1995년 북한 경수로 건설 지원을 위해 설치됐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총 건설 분담금(46억달러) 가운데 한국이 70%(32억달러), 일본이 22%(9억달러), 유럽연합(EU)이 나머지 8%를 부담하기로 했다. 미국은 공사비를 내지 않고 중유만 공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2002년 말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해 경수로 건설이 전면 중단되면서 기존에 투입한 건설 비용도 회수하지 못했다. 정부는 전체 투입 비용 15억6200만달러 가운데 11억3700만달러를 지원했다. 발생한 손실은 우리 국민의 부담이 됐다. 미국은 중유 공급으로 3억5000만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폐기 비용은 미국도 내나

비용 분담 비율이 경수로 지원 때와 비슷하게 이뤄질 경우 우리 정부의 부담 비율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원 규모는 경수로 지원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KEDO 사무총장을 지낸 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은 4일 통화에서 “미국의 무역적자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세금을 써가면서 대북 경제지원을 하지 않고 대북 제재 해제 조치만 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길은 내가 닦을 테니 운전은 문재인 정부가 하라’는 격”이라고 말했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KEDO 때는 서로의 지원 범위가 정해져 있었지만 이번엔 비핵화 지원 범위가 굉장히 넓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비핵화는 장기적 과제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그 부담이 엄청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핵물질이나 ICBM 반출 등과 같은 직접 비용은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이 공동 부담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는 “핵 미사일 반출 등에 드는 비용은 미국도 직접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향후 협의가 필요한 문제”라며 “미국이 전체를 부담하거나 주변국이 공동 부담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중국에 대해선 관측이 엇갈린다. 일본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 등 현안 해결 때문에 대북 지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김 전 차관은 “일본의 경우 먼저 북·일 수교를 내건 뒤 북한 지원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지만 그 대가를 바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과거사 문제로 인해 대북 보상을 결정할 때 일본과 협조하기 어렵고 중국도 이권이 있지 않는 한 적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정부와 얘기가 끝났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이 대부분의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채연/이미아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