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호국보훈의 달

입력 2018-06-03 17:50
허원순 논설위원


불교가 중국을 거쳐 이 땅으로 들어올 때 ‘국가종교’의 성격을 띠었다는 게 정설이다. ‘호국(護國)불교’란 말이 자연스럽게 된 것을 보면 단지 고대국가의 왕권강화 차원에서 받아들여진 것만은 아니었다. 신라 화랑의 세속오계(世俗五戒)부터 고려 대장경, 조선의 승병활동까지 대승(大乘)의 호국불교가 남긴 유·무형의 유산도 한둘이 아니다. 명산 유곡의 무수한 사찰과 암자 하나하나가 그윽한 정신문화의 터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게 호국과 결부된 불교였기 때문일지 모른다.

여러 종교가 자유롭게 번창하고 있고 정부가 수립된 지도 70년이나 되면서 이제 호국도 불교의 전유 가치는 아니다. 호국이 됐든 애국이나 보국이라는 표현을 쓰든, 이것도 국가의 업무영역 중 하나라는 인식 또한 자연스럽게 됐다. 국가보훈처가 존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물론 ‘작은 정부가 선(善)’ ‘가장 우선적으로 고양돼야 할 것은 개인의 자유’임을 역설하는 자유주의 입장에서는 ‘애국’이나 ‘호국’까지 제도나 행정으로 압박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나 우려가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국가 사회를 위한 값진 희생은 충분히 기릴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럴 때 개인의 자유 또한 신성한 가치로 보호받으며 더욱 확장될 수 있다.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이 된 것은 현충일, 6·25 침략전쟁, 1·2차 연평해전이 모두 이 달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무덤덤해져 화석 같은 말처럼 돼가는 ‘호국영령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기리자는 취지다.

국가보훈처가 5곳 지방보훈청별로 올해도 39개의 호국보훈의 달 행사를 준비했다. 호국영화제, 피란수도 부산야행, 6·25 유해 발굴 유품 전시 등 다채로운 기획이 보훈처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다. ‘나라사랑큰나무’ 배지달기 캠페인이 올해 강조되는 행사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백화점 3곳은 ‘아너스 위크’를 정해 국가유공자 우대 행사도 갖는다.

남북한의 오랜 대치와 북한의 반복된 도발로 보훈 대상자도 많이 늘었다. 원호 대상이 다양해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경제적 지원만이 아니다. 천안함 피격사건의 피해가족처럼 국가 사회가 정서적으로 깊이 보살펴야 할 이들이 적지 않다. 남북의 대화는 물론, 평화로 가는 길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이런 점까지 살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5월에서 6월로 넘어오자 변한 절후만큼이나 분위기가 달라진다. ‘가정의 달’ 5월도 중·장년들에게는 부담이 만만찮았다. 아이들 챙기랴 양쪽 부모님 살피랴 어깨가 무거웠는데, 6월도 또 다른 차원에서 부담이 될 것이다. 호국이라는 거창한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초여름의 이 싱그러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의 근원이 어디에 닿을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로 6월이 되면 좋겠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