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의 짙은 그늘… 새벽 인력시장 '한숨'

입력 2018-05-31 17:45
수정 2018-06-01 06:19
주유소서 일했는데 10대 알바 빼고 다 잘려… "막막해요"
막노동하려고 찾아 온 인력시장도 일감 '뚝'… "답답해요"

남구로역 인력시장 새벽 4시
40~60대 男 500여명 '북적'
작년보다 20% 이상 늘어

건설현장 일용직도 급감
성수기인데 10%나 줄어


[ 조아란 기자 ]
“지난 2월까지 친구 주유소에서 일했어. 친구가 월급 주기 힘들어졌다며 미안하지만 나가달라고 했지. 10대 애들 두 명 빼고 다 잘렸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고시원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는 김태용 씨(59)는 날이 차츰 밝아오자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새벽 4시부터 인력사무소 다섯 곳을 돌았지만 일거리를 찾지 못한 것이다. 오전 5시30분께부터 남구로역 5번 출구 앞에서 5분에 한 대꼴로 승합차가 사람들을 태워 갔지만 김씨는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했다.

올해 초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 한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하반기부터는 주52시간 근무제까지 시행될 예정이어서 ‘바닥 경기’는 말 그대로 바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줄폐업에 인력시장까지 떠밀려 와

31일 새벽 4시30분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삼거리는 40~60대 남성 500여 명으로 북적였다. 이 일대는 인력사무소 60여 개가 모여 있어 하루 평균 900여 명이 일자리를 찾으러 오는 서울 최대 규모 인력시장이다. 일거리의 90%가 콘크리트 해체 작업 등 건설 현장의 단순노동으로 일당은 11만~12만원 선이다.

십수 년째 이곳에서 일을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근 남구로역 일대는 김씨처럼 원래 일하던 영세 사업장이 인력을 줄이거나 폐업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인력시장에 나오게 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남구로역 5번 출구 옆에 있는 한 인력사무소 사장은 “경비하다가 잘렸다는 사람, 음식점 배달하다가 잘렸다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통에 작년 5월과 비교하면 일하겠다는 사람이 10~20% 늘었다”고 말했다.

인근 인력사무소에 따르면 이들은 한 달 평균 10일 남짓 일한다. 일당에서 중개수수료 약 1만원을 떼고 100만원에서 110만원을 월급으로 받는다. 지난 24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1분위)의 가계 명목소득은 128만6700원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소득 1분위에 해당하는 셈이다.

폐업한 자영업자도 있었다. 자신을 태워 갈 승합차를 기다리던 이모씨(53)는 “원래 중국집 사장이었는데 점점 빚이 생기고 작년 겨울엔 최저임금까지 오른다고 해 그냥 문을 닫았다”며 “신용불량자라 4대 보험에 가입 안 해도 되는 일자리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직원이 없는 ‘나홀로’ 영세 자영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8만9000명 줄었다.

인근 고시촌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새벽 4시부터 장이 열리다 보니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주변 고시원에서 숙식한다. 인력시장에서 100m가량 떨어진 한 고시원에 ‘방 있냐’고 문의하니 “주변에 방 있는 곳이 없을 테니 새벽에 5618번 버스가 다니는 대림동 쪽을 알아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성수기 5월인데도 일감 ‘뚝’

새벽 인력시장의 성수기는 5월에 시작해 10월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올해는 구인 수요가 예년만큼 크지 않다. 소상공인과 영세사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로를 앞두고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뚜렷해 지난해보다 10% 안팎 수요가 줄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한 인력사무소 사장은 “현장에서 상시근로자로 일하는 사람들은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전에 잔업을 챙겨 돈을 더 벌어두려 하기 때문에 임시직이나 일용직을 뽑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피해는 50~60대 저소득층에 집중되는 모습이다. 오전 9시부터는 간병, 식당, 청소 등의 일거리를 찾아온 50~60대 여성들도 눈에 띄었지만 일할 곳을 구했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일감을 얻지 못한 채 귀가하려던 양윤자 씨(55)는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채용이 안 돼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임시직·일용직 일자리는 올해 1분기에만 18만1000개나 감소했다. 지난해 1년 동안 감소한 일자리(10만1000개)보다 이미 8만 개나 더 줄어든 셈이다. 이에 따라 소득 하위 20%의 가계소득 증가율도 올해 1분기 -8%로 지난 5년 새 최악을 기록했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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