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대학 국제화'의 이면

입력 2018-05-27 18:05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통일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은 874년 당나라 빈공과에 장원급제했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지 불과 6년 만이었다.

우리 역사에 나타난 해외 유학(승려 제외)에 대한 최초 기록은 640년이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영류왕과 백제 무왕, 신라 선덕여왕이 당의 요청으로 귀족 자제들을 유학생으로 파견했다는 내용이 있다.

해외 유학생 숫자는 한 국가의 개방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통일신라를 이은 고려는 중국 송·원과 활발히 교류했으나, 조선은 대외 교류에 소극적이었다. 구한말이 돼서야 중국과 일본 등지에 국비유학생을 보냈다.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이 첫 국비유학생으로 미국 땅을 밟은 1884년이 근대적인 해외 유학의 첫 시작이었다.

한국의 해외 유학생 수는 22만~25만 명을 유지할 정도로 꾸준하다. 외국에서 대학 이상 고등교육기관에 유학 중인 한국인은 작년 기준으로 23만9824명으로 집계됐다.

글로벌 위상이 커지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유학생도 늘고 있다. 본격적인 외국인 국비 유학생의 시초는 말레이시아다. 최근 말레이시아 총리로 복귀한 마하티르(93)는 1980년대 ‘동방정책(Look East)’ 일환으로 한국에 유학생을 파견했다. 동방정책은 한국과 일본의 발전 모델을 배우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90년 유학생 파견을 중단했다. “한국의 고임금과 대립적 노사문제까지 배우면 말레이시아가 망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국내에 다시 유학생이 대규모로 찾아들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데다 한류 등의 영향이 컸다. 2015년 처음으로 10만 명을 돌파한 외국인 유학생이 지난 3월엔 15만 명을 넘어섰다.

국적별로는 중국 47.3%, 베트남 21.9%, 몽골 5.3% 등이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귀국 후 한국 기업에 취업하려는 중국과 동남아 유학생들의 ‘코리안 드림’이 주요 원인이겠지만, 국내 대학들의 적극적인 유치도 큰 영향을 미쳤다. 등록금과 정원 규제로 재정난에 처한 대학들이 외국인 학생 유치(총정원 10% 이내)로 돌파구를 찾고 있어서다. 유학생이 많으면 대학 평가 ‘국제화 지수’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대학의 유학생 유치 경쟁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어는 외국인들이 평소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 데다 배우기 어려운 편이어서 언어 습득 장벽이 높다. 국내 대학 입학 조건도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그래서 유학생의 상당수는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2016년에만 유학 중도 포기자가 3598명에 달했다. 한국에 공부하러 왔다가 따라가지 못하고 돈벌이를 선택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늬만 국제화’를 부추긴 국내 대학 재정난의 씁쓸한 단면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