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자단의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취재가 무산됐다. 북한은 지난 12일 “오는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진행한다”며 한국과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언론에 취재를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한국 기자단에는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북한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며 중국 베이징에 갔던 취재기자단은 헛걸음하게 됐다.
북한의 변덕이 새로울 건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핵·미사일 도발을 일삼던 북한이 올해 들어 갑자기 대남 대화 공세를 편 것부터가 그렇다. ‘4·27 남북한 정상회담’을 전후해서는 한반도 평화와 민족 화해를 위해 무엇이든 다 들어줄 것처럼 온갖 감언이설을 쏟아냈다. 그러던 북한이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식의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일방적인 남북 고위급 회담 취소, 탈북 식당 여종업원 송환 요구 등 상식에 어긋난 억지와 무례를 부려가며 대한민국을 흔들어대고 있다.
‘풍계리 사건’은 그런 와중에 불거진 것이지만, 그 속에 담긴 오만함은 대한민국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 폐기하는 장면을 남측에도 취재할 수 있게 하겠다고 먼저 제안한 쪽은 북한 정부였다. 그에 따라 준비해 온 언론사 취재진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입북을 막은 행위는 단지 언론사만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를 농락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과 얼마 전 남북한 정상회담을 전후해 개통한 최고지도자 간 직통전화와 실무부처 간 통신선은 그야말로 ‘보여주기식 쇼’였음이 분명해졌다. 북한이 대한민국 정부와 언론을 향해 던지려는 ‘풍계리 메시지’가 무엇이든, 할 말이 있다면 통신라인을 통해서 얼마든지 밝힐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한·미 합동 군사훈련과 탈북인사의 북한 실상 폭로 등에 대한 불만을 기관지 보도를 통해 늘어놓은 것 외에 통신선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대한민국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길들이겠다는 속내가 뻔하게 읽힌다. 북 정권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해 온 문재인 정부의 ‘선의’를 이런 식의 무례와 횡포로 갚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스스로의 입지를 더욱 좁히게 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측의 대응 태도다. 북한의 저질스런 행태에 끌려다녀서는 안 될 것이다. 풍계리 행사에 대해 북한 정권이 저지른 무례와 횡포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요구하고,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북한의 그동안 행태로 볼 때 당당하게 처신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을 더 우습게 보고, 풍계리 이상의 횡포를 일삼을 게 뻔하다. 북한 김정은의 ‘통 큰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