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회장이 남긴 경영화두
(1) 외환위기 겪으며 구조조정에 거부감
"직원 안 버린다" 믿음 주는 기업으로
(2) 비용 들어도 과감히 R&D·인재투자
모터기술 개발… 글로벌 가전기업 도약
(3) "손해 봐도 신의 지켜라" 계열분리 성공
[ 노경목 기자 ]
LG전자에서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C사업본부 주변에서는 2016년 말부터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해당 사업본부에서만 1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이 예상되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말이 떠돈 것이다. 이런 소문을 접하고도 LG전자 임직원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구본무 회장님이 (구조조정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23년간 LG를 이끌며 경영활동의 대부분을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맡겼다. 하지만 몇 가지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의 원칙을 명확히 세우고 끝까지 밀고 나갔다. 무분별한 인력 구조조정 금지와 장기적인 안목의 연구개발(R&D) 투자, 고객 및 동업자와의 상생이다. 위기 상황에서도 끝까지 원칙을 지키면서 국내 어떤 기업과 비교해도 차별화된 LG만의 성공 DNA를 만들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구조조정에 대한 구 회장의 거부감은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직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LG그룹 회장 취임 3년 만에 이 같은 사태를 맞은 구 회장은 자신의 재임 기간에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구조조정안이 나오자 불같이 화를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시 구 회장은 구조조정을 제안하는 CEO들에게 “당신들이 제대로 못해 경영이 어려운데 왜 사람부터 자르려고 하느냐”며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원칙은 LG그룹 직원들 애사심의 기반이 됐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직원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LG화학의 한 직원은 “이직해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LG에 있을 때가 좋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R&D와 인재에 대한 장기 투자도 구 회장의 경영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LG전자 가전제품이 세계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는 비결인 모터 기술이 대표적이다. 외환위기 직후 대부분 경쟁사가 수익성을 좇아 모터 제작을 외주화할 때도 LG전자는 모터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각 제품의 핵심 기술만큼은 비용이 들더라도 기술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구 회장의 지론 때문이었다. 반기별로 열리는 경영현황 보고회에서도 구 회장이 가장 세심하게 챙긴 게 R&D 관련 투자 수치다. LG그룹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서울 강서구 마곡동)를 갖춘 것도 구 회장이 미래를 위한 투자에 힘을 쏟은 덕분이다.
고객과 동업자 등에 대한 신의도 빼놓을 수 없다.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신의를 지키면 장기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게 구 회장의 신념이었다. 2003년 LS그룹, 2005년 GS그룹과의 계열분리가 대표적이다. 계열분리 결과 110조원가량이던 LG그룹의 매출은 80조원 안팎으로 줄었다. 건설과 정유, 전력 인프라 사업 등 현금 창출원이던 계열사들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끝까지 신의를 지키며 잡음 없는 계열분리를 마친 구 회장은 남은 기업들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05년 3조6000억원이던 LG그룹의 총 영업이익은 지난해 10조6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재계 관계자는 “구본무 회장은 원칙과 도의를 지키면서도 글로벌 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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