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 타계
구본무 회장의 삶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다
1975년 (주)럭키 입사 후
10여년간 현장서 실무경험
1989년 본격적 경영 참여
관광버스 빌려 사업장 투어
임직원과 격의없는 대화
장자 승계 원칙 지키다
조카 구광모를 양자로 입적
그룹 후계자로 양성
유교적 가풍 이어가
[ 고재연 기자 ]
“할아버지 손을 잡고 공장 구경을 갔을 때 땀 흘리며 비누와 ‘동동구리무’를 만들던 직원들이 생각난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생전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그는 “할아버지는 사업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으로 현재 LG의 사업 틀을 구축했고, 부친은 그 사업 기반을 굳게 다지셨다”는 말도 덧붙였다. 고(故) 구인회 창업회장과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끈 구 회장은 LG를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려놨지만 소탈하고 검소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재벌 회장’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년에 걸친 ‘경영 수업’
구본무 회장은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해인 1945년 2월10일 경남 진주시 진양군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구자경 명예회장과 고(故) 하정임 여사 사이의 4남 2녀 중 첫째로, 구인회 창업회장의 맏손자였다. 어린 시절부터 소탈하고 검소했던 조부를 보고 자라며 그 성향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다. 구인회 회장은 창업 초기인 1940년대 후반 부산에서 활동할 당시 편하다는 이유로 미군 파카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소매가 닳고 기름때가 반지르르 묻은 옷이었다.
소학교 교사였던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으로부터는 엄격한 규율과 예의범절을 배웠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1950년 부친인 구인회 회장의 부름을 받고 락희화학에 이사로 입사했다. 그는 공장에서 현장 근로자들과 같이 먹고 자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구인회 회장은 생전에 왜 장남을 그토록 고생시키느냐는 질문에 “대장장이는 하찮은 호미 한 자루 만드는 데도 담금질을 되풀이해 무쇠를 단련한다”고 답했다.
LG가의 혹독한 교육 방식은 구본무 회장 때까지 이어졌다. 훗날 구본무 회장은 “그룹 경영권 승계 당시 사기(社旗·회사 깃발)를 넘겨 받을 때 아버님의 손을 처음 만져봤을 정도로 다가가기 힘든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업과 관련한 구자경 명예회장의 질책에 가출을 고민하기도 했다.
구본무 회장은 1964년 연세대 상경대학에 입학한 뒤 학교를 다니다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다. 재벌 총수 가운데 드문 현역 출신이다. 보병으로 만기 제대한 뒤에는 미국 애슐랜드대로 유학을 떠났다.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1975년 30세 나이에 (주)럭키(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했다.
(주)럭키 수출관리부장, 유지사업본부장을 거쳐 1980년 금성사(현 LG전자)로 옮겨 기획심사본부장을 맡았고 1983~1984년 도쿄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입사 10년 만인 1985년에야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1989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격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활동에 참여했다.
양자를 후계자로 삼은 사연
1972년 김태동 전 보건사회부 장관의 딸인 김영식 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닌 ‘재원’으로 서구적인 외모를 지녔다. 시아버지인 구자경 명예회장은 “보수적인 며느리를 원했는데 맞고 보니 맏며느리는 개방적이고 아래 며느리들이 보수적이었다. 뒤바뀐 감도 없지 않지만 그만하면 잘 맞는 편”이라고 했다. 금실이 좋기로 유명했지만 ‘내외’는 분명했다. 김씨가 다른 그룹 회장 부인과 달리 미술관을 운영하지 않고, 여의도 트윈타워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것도 LG가의 엄격한 단속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슬하에 아들과 딸 둘을 뒀으나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상무를 2004년 양자로 입적해 경영 수업을 받도록 한 까닭이다. LG그룹은 ‘장자가 가업을 승계하고, 일단 승계가 시작되면 선대의 형제는 모두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유교적 가풍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드물게 소신 있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2016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 때 다른 재벌 총수와 달리 ‘사이다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당시 새누리당 소속 위원이던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앞으로도 명분만 맞으면 정부의 요구에 돈을 낼 것인가”라고 묻자 구 회장은 “불우이웃을 돕는 일은 앞으로도 지원하겠다”고 소신 있는 답변을 내놨다. 하 의원이 “앞으로도 정부에서 돈을 내라고 하면 이런 자리(대통령과 면담)에 나올 것인가”라고 묻자 구 회장은 “국회에서 입법으로 막아 달라”고 ‘역제안’을 했다.
격식보다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소탈한 성품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계열사 사장단과 국내 사업장 ‘혁신 투어’를 할 때도 대형 관광버스 두 대를 빌려 2박3일간 다닐 정도로 소탈한 행보를 보였다. 사업장을 다니면서 사장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생전에 냉면을 좋아해 마포 염리동 ‘을밀대’를 자주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열사 사장이나 임직원들과 함께 조용히 방문해 냉면을 먹고 가 일반 사람들은 구 회장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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