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앞두고 정치인 폭행 되풀이…노무현·박근혜 등 수난의 역사

입력 2018-05-20 08:46
주먹·계란·커터칼·흉기 등 도구도 다양해
정치인 테러는 명백한 범죄
6·13 지방선거 앞두고 정치인 경호 비상


의회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제1야당 원내대표는 대낮에 국회에서 폭행을 당하고 토론회에서는 계란이 투척된다.

타협하는 정치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여야를 떠나 정치인으로서 책무지만 논란을 둘러싼 갈등이 지나치게 과열양상을 보이는 경우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정치인에 대한 물리적 폭행이 자행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 14일 무소속으로 6·13 지방선거에 출마한 원희룡 제주지사 후보가 제주 제2공항 반대 단식농성을 했던 제주도민에게 계란을 봉변과 함께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우리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던 정치인들은 대게 이러한 테러를 한 번씩은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폭행이나 계란 투척 세례를 받았던 정치인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봤다.


▲1999년 김영삼 전 대통령-빨간 계란 테러 사건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많은 정치학자나 비평가들로부터 공과 과가 가장 뚜렷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시행, 조선총독부 철거 등은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했던 그의 대표적인 공이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아픔이 하나 있다면 바로 IMF 경제 위기를 초래한 정부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지난 1999년 6월 일본으로 출국하기 위해 김포공항에서 수속을 밟던 김 전 대통령은 한 시민으로부터 붉은 페인트가 주입된 계란을 얼굴에 맞아 부상을 입는 일이 있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에게 계란을 던진 사람은 IMF 경제 위기를 발생시킨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계란을 던졌다고 범행 동기를 털어놨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농민이 던진 계란에…

3년 후인 2002년 11월 당시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 연설 도중 한 농민이 던진 계란에 맞았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계란을 맞고도 끝까지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 내려가 눈길을 끌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달걀을 맞아 일이 풀린다면 얼마든지 맞겠다"고 말해 주변을 놀라게 만들었다.


▲2006년 박근혜 전 대통령-커터칼 테러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6년 5월 20일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지방선거 지원 유세를 하다 한 50대 남성에게 커터칼로 얼굴을 베이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이 남성이 휘두른 흉기는 15 cm 가량의 커터칼로, 박 전 대통령은 귀 아래부터 얼굴 오른쪽의 턱 바로 윗부분까지 찢어지는 상해를 입었다.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된 이 남성은 경찰 조사 결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8건의 전과로 15년 가까이 복역한 사실이 드러났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오랜 수감 생활이 억울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수술 뒤 깨어난 박 전 대통령이 '대전은요'라고 물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며 선거판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2007년 이회창 전 총리-대구 서문시장에서 맞은 계란

2007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회창 전 총리는 유세를 하기 위해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가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신원 미상의 남성으로부터 이마에 계란을 맞는 봉변을 당했다.

당시 예기치 않은 상황에 이 후보를 경호하던 경호팀은 이 후보를 옷가지로 덮어씌운 뒤 인근 상가연합 사무실로 데려가 신변을 보호했고 나머지 경호팀은 계란을 던진 남성을 현장에서 붙잡아 경찰에 인계했다.

이후 이 후보는 상공인과 간담회 자리에 파란색 모자를 쓰고 나타나 "서문시장에서 계란 마사지를 받는 바람에 모자를 쓴 것을 이해해 달라"고 말하며 "(계란을 던진 것이) 저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라 생각한다"고 넘겼다.

경찰에 따르면 "이 후보에게 계란을 던진 남성은 이 후보를 지지해왔으나 이번 대선에서 경선을 거치지 않고 나온 것에 실망해 계란을 던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BBK 때문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12월 3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 중앙로앞 거리 유세에 들어가기 위해 차량 연단에 오르던 중 왼쪽 허리부분에 계란을 맞았다. 하지만 이 후보는 바로 옷을 추스리고 연설에 들어갔으며 당초 2시 30분 시작할 예정이던 유세는 15분가량 지체됐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계란을 던진 사람은 승려 복장을 한 50~60대 남성으로 알려졌으며 현장에서 BBK 관련 전단지까지 살포해 눈길을 끌었다. 이 남성이 뿌렸던 전단지에는 "부패하고 정직하지 못한 이 후보는 즉각 사퇴하고 검찰은 BBK사건 전모를 밝혀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던 것으로 전해져 BBK를 둘러싼 국민적 의혹이 얼마나 컸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으로 남아있다.


▲2014년 안상수 창원시장-같은 당 의원에게 맞은 계란

안상수 창원시장은 지난 2014년 9월 창원시의회 본회의장에서 같은 당이었던 김성일 전 시의원에게 계란 투척 봉변을 당했다.

김 전 의원은 개회사가 끝나기 직전 안 시장 앞으로 걸어가 "마산·창원·진해를 강제로 통합시켜 놓고, 야구장 뺏어 가고, 그게 무슨 짓이야"라고 소리친 뒤 계란 2개를 연이어 던졌고 당당하게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김 전 의원이 던졌던 계란 중 한 개는 안 시장의 오른쪽 어깨에, 한 개는 본 회의장 벽에 맞았다.

본회의장에서 봉변을 당한 안 시장은 정례회 개회 10여 분만에 본회의장을 빠져 나와야만 했다. 당시 김 전 의원이 안 시장에게 계란을 투척한 이유는 창원시가 NC다이노스 야구장 장소를 진해에서 마산으로 변경한 것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이 일로 김 전 의원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시의원직을 상실했다.

▲2015년 문재인 대통령-당 대표 시절 지역구 사무실 습격 당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5년 12월 30일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이던 시절, 당시 문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부산시 사상구 사무실에 50대 괴한이 침입해 1시간 남짓 인질극이 벌어진 사건이 있었다.

이 남성은 미리 준비한 식칼을 가지고 직원 A씨를 흉기로 위협한 뒤 청테이프로 몸을 결박했다. 이후 '문현동 금괴사건 도굴범 문재인을 즉각 구속하라'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소화기를 던져 창문을 깨고 출입문을 걸어 잠근 뒤 인질극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경찰이 진입작전을 펼치기 전 이 남성은 직접 현관문을 열고 나와 검거됐으며 1시간 20분 남짓 인질로 있었던 A씨는 별 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다.


▲2015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그래도 "같이 갑시다"

주한 외국인을 상대로 한 테러도 있었다. 2015년 당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연을 준비하던 도중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로부터 흉기로 얼굴과 왼쪽 손목 부위를 수차례 공격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리퍼트 대사의 피습으로 국내에서는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리퍼트 대사는 수술을 마친 뒤 한국어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같이 갑시다"라고 말해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리퍼트 대사를 피습한 김기종은 대표는 범행 직전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하라"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징역 12년이 확정됐다.


▲2017년 박지원 의원-안철수 지지자로부터 맞은 계란

박지원 의원은 지난해 12월 전남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열린 김대중평화마라톤대회 개회식에 참석했다가 한 여성이 던진 계란에 오른쪽 뺨을 맞았다. 당시 목표경찰서는 박 의원에게 계란을 던진 여성 A씨를 붙잡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가 당을 해체하려고 해 항의하는 의미에서 계란을 던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차라리 제가 당한 게 다행"이라고 말하며 "사소한 소란이 목포에서 발생한 데 대해 국민과 목포 시민께 송구하단 말씀을 드린다"고 말해 사안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주먹으로 턱 가격당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오후 2시 30분께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던 중 악수를 청하며 다가오던 김 모씨에게 턱을 가격당했다. 이후 김씨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즉각 제압됐고 김 원내대표는 손으로 턱을 감싼 뒤 누워 고통을 호소하다 병원으로 후송됐다.

김 모씨는 경찰조사 결과 애초 홍준표 대표를 폭행하려고 계획했지만 홍 대표가 있는 위치를 몰라 김 원내대표를 찾아가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폭행 이유에 대해서는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이 그렇게 어렵나.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무죄"라고 외쳐 자유한국당의 주장에 불만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자유한국당은 김 모씨의 범행을 철저히 계획된 범죄로 규정, "행적 조사와 배후까지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처벌은?

그들이 정치인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계란을 던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계란을 던지는 것은 비교적 부상의 위험이 적으면서도 시각적으로 상대방에서 수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테러 방법이다.

항상 정장을 입고 반듯한 자세를 유지하며 품위를 유지하는 정치인들에게 계란물로 뒤덮인 모습을 보여 망신을 주겠다는 것이 그들의 심산인 것이다.

동시에 언론에 주목을 받기에도 좋다. 그들은 나름대로 자기 만의 신념과 의지가 있다.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때 언론의 영향력을 기대하며 이슈화를 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득이 된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폭행은 물론 계란 투척 역시 폭행죄 적용이 가능한 범죄행위다. 형법에 따르면 폭행죄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게 돼 있다.

정치인을 향한 폭행이나 계란 투척은 우리 사회가 처한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 지 알 수 있는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이 극에 달하는 선거철을 앞두고 유세 현장이나 토론 현장에서 이러한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반대하는 정치인에게 주먹과 계란을 던지는 것 보다는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국민이 힘을 드러낼 수 있는 귄리행사임을 잊지 말자.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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