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회담 무산' 위협 이틀만에… 트럼프 "판 깨지면 초토화" 7번 언급

입력 2018-05-18 18:13
수정 2018-08-16 00:00
美·北, 정상회담 앞두고 氣싸움

美 '리비아式' 아니라며 경고
"北 비핵화 땐 한국처럼 번영"
체제보장·경제적 보상 약속하며
협상 불발땐 '정권 몰락' 압박도

트럼프 '시진핑 배후론' 제기
"김정은 두번째 방중은 의외
시진핑 만난뒤 상황 완전 달라져"
中지원 담보로 北 태도변화 의심


[ 워싱턴=박수진 기자 ]
다음달 12일 미·북 정상회담을 20여 일 앞두고 미국과 북한의 기(氣)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북한이 ‘정상회담 무산’까지 언급하고 나서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축출된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직접 거론했다. 비핵화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면 정권 몰락과 함께 처참한 최후를 맞은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대통령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란 경고다. 워싱턴 소식통은 “미·북 정상회담 의제는 이제 준비 단계”라며 “양측이 판을 깨지 않는 선에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北 핵보유 용납 못해”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작심한 듯 북한 문제를 거론했다. 북한이 남북한 고위급회담을 전격 취소하면서 한반도 화해 무드를 긴장 국면으로 바꿔 놓은 지 이틀 만이다. 그가 이날 언급한 것은 △북한에 대한 당근과 채찍 △중국 역할 △미·북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 등 세 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방법과 관련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얘기한 뒤 북한의 반발을 사고 있는 ‘리비아 모델’에 대해서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내가 처음부터 거부했다”고 했다. 비핵화 이후 북한 모델에 대해선 “김정은이 존재하는 그 무엇이 될 것”이라며 “그는 계속 나라에 남아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모델로 경제 번영이 가능하도록 돕겠다고도 했다. ‘일방적 핵 포기 요구’가 아니라 체제 보장과 경제성장이라는 확실한 보상을 약속한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온 뒤 민간투자를 통한 북한 개발 등을 약속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비핵화 협상이 실패하면 리비아 모델이 적용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의 확실히(most likely)”라고 덧붙였다. 리비아 선례를 거론하며 일곱 차례나 ‘초토화(decimation)’라는 단어도 언급했다. 지난해 9월 유엔 총회에서 “북한이 핵으로 위협하면 ‘완전하게 파괴(totally destroy)’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발언한 뒤 가장 극단적인 표현이다.

◆“시 주석이 북한에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갖도록 허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지만 어느 정도 수위의 비핵화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무기·원료·시설뿐만 아니라 미사일 프로그램 및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아우르는 포괄적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핵화 보상 방식은 절충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22일 워싱턴DC를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한반도 비핵화 방식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비핵화 단계별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원하는 북한의 요구와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을 강조하는 미국의 주장 중간 어디쯤에서 합의점이 마련될 수 있도록 설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협상이 쉽지 않을 수 있음을 여러 차례 시사했다. 그 이유로 중국을 들었다. 그는 이날 ‘북한의 태도 변화가 전형적인 협상 전술이냐’는 질문에 “김정은이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두 번째 만난 뒤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시 주석이 김정은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지난 8일 시 주석과 한 다롄 정상회담에서 뭔가를 약속받았고, 이후 북한이 미국에 공세적으로 나왔다는 해석이다. 김정은이 방중한 시기는 남북 정상회담 후 미·북 정상회담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미국에서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는 보상이 없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때와 맞물린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비핵화 압박을 받은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담보로 확보하고, 통상 압박을 받는 중국은 북한을 지렛대로 미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여러 매체에서 회담이 안 열릴 수 있다고 보도한다”거나 “회담이 정말 그 날짜에 열리게 될까” 등 회담 무산 및 연기 가능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미국도 북한의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회담장에 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다.

트럼프 대통령은 논란이 되는 주한미군 감축 여부에 관한 질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며 “그(김정은)가 매우 충분한 보호를 받을 것이라는 점을 말하겠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고 말했다. 그는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나는 세상이 평화롭기를 원한다. 그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