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호 기자의 Global insight
美 경제학과 여성 비율 30%대
고소득 일자리 대부분 男 차지
고용·복지 등 정책결정 과정서
여성 시각 정책 반영 어려워
[ 유승호 기자 ]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의 리서치담당 이사인 메리 데일리는 1997년 미국 중앙은행(Fed)에서 첫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당시 Fed의 한 간부는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데일리에게 다가가 “이렇게 작은 여자가 이처럼 놀라운 발표를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Fed 직원 중 여성이 워낙 적었기에 그런 반응이 나올 만도 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데일리는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경제학 분야에서 여성은 여전히 소수”라고 했다. 변화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재닛 옐런이 여성으론 처음으로 Fed 의장(2014~2018년)을 지냈고, 엘리너 오스트럼 전 인디애나대 교수는 2009년 여성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여성에게 경제학은 여전히 높은 벽이다.
미국 대학 경제학과 재학생 중 여학생 비율은 30% 선에 그친다. 전체 대학생 중 여학생 비율이 60% 가까이 되는 것에 비하면 경제학과 여성 비율이 유난히 낮다. 영국도 비슷하다. 전체 대학생 중 57%가 여성이지만 경제학과 여학생 비율은 30%대 초반에 불과하다.
한국에선 지난달 서울대 경제학부가 여성 교수를 채용하기로 해 관심을 끌었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72년 역사상 여성 교수는 2009~2014년 재직한 중국인 손시팡 교수가 유일하다. 한국인 여성 교수는 없었다.
경제학 전공자 중 여성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학 공부에 수학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수학에 능숙하지 않아 경제학을 기피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수학과의 여학생 비율은 경제학과보다 높다. 미국 대학에서 이공계의 여학생 비율은 40% 가까이 된다.
혹시 여성이 경제학을 연구하는 재능이 남성에 비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영국 리버풀대 경제학과 강사 에린 헨젤은 한 논문에서 여성 학자들이 남성 학자들에 비해 논문을 적게 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여성 학자들은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선배나 동료 학자들로부터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는다고 지적했다.
헨젤은 유명 경제학 저널에 실린 논문을 분석해 여성 학자의 논문이 남성 학자의 논문보다 가독성이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여성 경제학자가 쓴 논문이 양적으로는 남성 경제학자에 뒤질지 몰라도 질적인 면에서 오히려 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경제학의 성비 불균형은 성별 임금 격차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영국에선 경제학 전공자의 평균 소득이 의학 전공자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경제학 전공자들이 금융권 등 고소득 직종에 취업하는 경향이 많아서다. 하지만 경제학을 공부한 여성이 적다 보니 이 분야 일자리를 주로 남성들이 차지하면서 성별 임금 격차가 커진다는 것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여성이 배제되는 문제도 생긴다. 고용 복지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학적 연구와 분석 결과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여성 경제학 전공자가 적은 탓에 여성의 시각이 정책에 반영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라 스미스 영국 브리스톨대 경제학과 교수는 “(성별에 따라) 경제학자가 던지는 질문이 달라지는데 여성 경제학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궁극적으로 정책 결정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많은 나라에서 경제학의 성비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웬디 카를린 영국 UCL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학 강의 기법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더 많은 여성이 경제학을 공부하면 성차별이 줄어들 수 있을까. 데일리는 자신의 기고문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언젠가는 여성이 뛰어난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 때 아무도 놀라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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