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편집국 부국장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사인 ISS가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안에 반대 의견을 냈다. 해당 자료를 구해 읽어봤다. 엉성하다 못해 부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업에 대한 판단은 비전문적이었고 결론에 끼워 맞춘 듯한 수치 인용은 교묘하고 악의적이었다.
ISS는 우선 지배구조 개편의 당위성과 사업 재편의 타당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들이 즐겨 하는 표현대로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세계 자동차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진단은 한 줄도 없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실질적 지배회사인 모비스의 사업을 평가하면서 보쉬 콘티넨탈 등과의 비교 분석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ISS는 이죽거리는 듯한 문투로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미래 전략을 신뢰할 수 없다고 단정해버렸다.
엉터리 자료로 기업가치 산정
ISS는 또 모비스에서 떨어져 나오는 분할법인(국내 모듈+애프터서비스 산업)과 현대글로비스 간 합병 비율이 모비스 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책정됐다고 주장했다. 분할법인이 실제 기업가치에 비해 저평가되고 글로비스는 고평가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펼치면서 근거로 제시한 수치들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ISS는 보고서에서 올해 모비스 분할 부문의 에비타(EBITDA: 상각전 영업이익)를 지난해(1조5000억원)보다 20%가량 늘어난 1조8000억원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 4월 말 발표된 1분기 모비스 영업 실적은 전년 동기에 비해 32.7%나 급락한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ISS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정반대의 추정치를 제시한 것일까. 해답은 톰슨로이터라는 투자정보업체에 있다. 한국의 에프앤가이드처럼 금융회사 분석 자료들을 모아 상장사에 대한 실적 추정과 목표 주가 등의 평균을 제시하는 기업이다. 톰슨 수치는 왜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까. 이것은 톰슨의 잘못이 아니다. 시장 정보를 분석하는 데는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는 과정의 시차와 분석가들의 능력 격차가 존재한다. ISS가 5월3일자로 인용한 톰슨 수치는 아직 모비스의 실적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었을 뿐이다.
현대차 재편 이번에 마무리해야
그럼에도 ISS는 톰슨의 실적추정치 자료를 계속 인용해 자신들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모비스 저평가-글로비스 고평가’ 구도를 만들어 갔다. 지배구조 개편에 따른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가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하지만 분할법인 저평가로 모비스 주주들이 손실을 입는다면 최대 피해자는 정몽구 회장이다. 모비스 지분을 7% 가까이 들고 있는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들 정의선 부회장은 글로비스 대주주로서 이득을 보지 않느냐는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정 부회장이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면 2014년 대비 주가와 에비타가 모두 반 토막이 난 현시점을 선택했을까.
모비스의 국내외 주주들이 ISS처럼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자문사들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반대 논리를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다.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을 조기에 제거해야 하는 현대차의 절박한 사정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 ISS 같은 회사는 죽었다 깨어나도 순환출자 해소, 일감몰아주기 금지 등과 같은 한국 기업규제의 실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기업들이 뭘 하나 바꾸려면 공정거래법 자본시장법 상법 세법 외에 ‘국민정서법’까지 지켜야 한다. 모비스의 지배구조 개편안은 그에 따른 고육지책이다. 현대차그룹이 20여 년 만에 시도하는 재편 기회를 이대로 날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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