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하늘을 나는 택시에 사람 태워 시험 비행
도시 여행에 혁명 가져 올 것
[ 설지연 기자 ]
“미국 뉴욕 맨해튼 도심에서 존 F 케네디(JFK) 공항까지 가려면 지금은 교통 체증까지 고려해 자동차로 55분이 걸린다. 하지만 비행택시를 이용하면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게 될 날이 곧 올까. 독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릴리움은 최근 “내년에 사람을 태우고 시험 비행을 하고, 2025년엔 본격적인 상업 운행을 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플라잉카(비행차)’ 분야엔 에어버스, 우버, 키티호크 등 글로벌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릴리움은 텐센트홀딩스 등 다수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유치하는 등 비행차 개발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다. 대학원생 4명이 설립한 이 스타트업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전기제트기 시험 주행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스카이프, 구글, 우버 등도 릴리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니엘 비간트 릴리움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가까운 미래에는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쉽게 예약할 수 있는 비행택시를 이용해 자동차보다 목적지에 훨씬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세계 도시를 여행하는 방식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상업 운행 목표”
지난해 4월 릴리움이 세계 최초로 시험 주행에 성공한 2인승 전기제트기는 한 번 충전하면 최대 시속 300㎞로 약 300㎞의 거리를 날 수 있다. 런던과 파리 사이를 비행하는 데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 전기제트기는 36개 프로펠러가 달렸고, 전기배터리로 움직인다.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친환경적인 데다 소음도 거의 없다. 드론(무인항공기)처럼 수직으로 이착륙할 수 있어 긴 활주로도 필요 없다. 이런 장점을 이용해 복잡한 도심에서 자동차를 대체하는 새로운 운송수단으로 만들겠다는 게 릴리움의 전략이다.
릴리움은 최근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프랭크 스티븐슨을 디자인 책임자로 영입했다. 그는 BMW 미니, 페라리 F430, 맥라렌 P1 등을 디자인했다. 릴리움이 스티븐슨을 영입한 이유는 단순히 빨리 목적지에 가는 걸 넘어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비행택시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스티븐슨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택시를 타면 사람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후딱 내려버린다. 당신이 릴리움에 타게 된다면 여행을 얼마나 즐겼는지를 먼저 얘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뮌헨공대 출신 청년 4명이 창업
릴리움은 2015년 2월 독일 뮌헨공대 대학원생 4명이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만들어졌다. 창업 멤버 중 한 명인 비간트가 CEO를 맡고 있다. 4명의 대학원생은 ‘가정집 벽에 붙은 소켓에서 충전하고 마당에서 이륙하는, 전기엔진을 사용한 작은 비행기라면 소음도 없고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가정용 전기비행기 개발을 시작했다. 비간트 CEO는 “공항 같은 거대한 인프라가 아니라도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항공기를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정식 창업을 하기도 전에 유럽우주국으로부터 프로젝트 비용을 지원받았다.
창업한 지 이제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릴리움은 ‘글로벌 클린 테크기업 100 어워드’로부터 ‘올해의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 61개국, 1만2300개의 후보 기업을 제치고 ‘가장 혁신적이고 유명한 아이디어로 미래의 깨끗한 환경에 기여할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으로 인정받았다. 이 상의 선정 기준은 ‘향후 5~10년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다.
◆글로벌 ‘큰손’도 눈독
이들의 비행차 아이디어엔 글로벌 기업들도 관심을 보이며 투자하고 있다. 인터넷 전화 서비스 스카이프의 창업자인 니클라스 젠스트롬은 2016년 자신이 설립한 벤처캐피털 아토미코를 통해 1000만유로(약 130억원)를 릴리움에 투자했다. 그는 “릴리움의 전기제트기 기술은 세계 대도시의 교통 체증과 환경 오염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며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빨리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릴리움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젠스트롬의 투자를 받은 릴리움은 에어버스와 테슬라 출신 엔지니어 등 인재를 영입해 직원을 75명까지 늘렸다.
작년엔 텐센트홀딩스, 프라이빗뱅킹그룹 LGT, 어비어스벤처스 등으로부터 9000만달러의 자금을 조달받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릴리움은 이 회사들뿐 아니라 구글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우버, 에어버스로부터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릴리움은 다른 비행차 개발 업체와 달리 호버크래프트(아래로 분출하는 압축 공기를 이용해 수면이나 지면 위를 날아다니는 것) 기술에만 몰두하기보다 전기제트기, 비행택시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비간트 CEO는 “규제 기관이 승인하기만 하면 소비자들은 혼잡한 도시를 가로질러 하늘을 나는 택시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운송 수단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릴리움의 전략이 텐센트 등 전자상거래 업체까지 매료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NYT는 “비행차를 통한 운송이 현실화하면 가장 이익을 보는 분야는 전자상거래 시장”이라며 “비행차는 도로 개발이 덜 된 지역뿐 아니라 교통 체증이 심한 선진국 대도시까지 사람과 물건을 운송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