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다른 정책, 닮은꼴 정책

입력 2018-05-16 17:33
수정 2018-05-17 07:55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 박기호 기자 ] 대의명분(大義名分)이 거창한 일일수록 소의(小義)는 무시되곤 한다. 사소한 데 집착하면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설명이 곁들여지면서 말이다. 정부 정책은 그래서는 안 된다. 소의를 배려하고 혜택이 덜 가는 계층을 줄이는 정책일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노동 존중 정책에서 소의가 홀대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중단기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되 당장 피부에 와 닿는 효과에 비춰보면 그렇다. 혜택이 집중되는 노동계가 대의(大義)인지, 노동계 위주로 혜택을 주는 데 어떤 정치적 함의가 있는지는 논외로 치자.

확대되는 '小義 홀대론'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소득주도 성장론과 맞닿아 있다. 올해 최저임금이 16.4% 올랐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는 물론 이곳의 근로자 상당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건비 부담으로 감원에 나서자 투잡을 찾는 근로자들이 생기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대표적 수혜 대상으로 기대됐음에도 말이다.

‘2017년 비정규직 제로’를 외친 인천공항은 정규직화가 여전히 진행형이다.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화는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지만 그럴수록 비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도 소의에 대한 홀대가 예정된 듯 여겨진다. 협상력이 강력한 공공 부문과 기업체의 노조원(10.3%)을 제외한 근로자들은 임금 삭감 처지에 놓였다. 노조 보호를 받는 근로자들은 근로시간 단축분보다 급여가 덜 줄어들게 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노조원의 떼쓰기가 통한다면 부품 납품단가 인하로 전가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비노조 근로자와의 상생과 동반성장 없이 한국호(號)는 순항하기 힘들다.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근로 체계가 필요한데 관련 법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보완책 마련을 문재인 정부 5년 임기 이후인 2022년 말까지 유예했다.

전기차 vs 차 부품업체

산업 정책도 소의를 홀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열린 자동차의 날 행사에서 정부가 밝힌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 계획이 단초를 제공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축전지 개발을 통한 장거리 운행과 충전소 대거 확충, 고속도로 자율운행 허용 등으로 상용화를 앞당기겠다고 했다. 행사장에 참석한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는 우리에게 공포 그 자체”라고 걱정했다. 다른 관계자는 “기름이나 가스로 달리는 차는 부품이 3만 개인데 전기차는 1만 개에 불과한 데다 전기차 부품은 연구개발(R&D)을 통해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여력이 없다”며 “자동차 부품업체 대부분은 거리에 나앉을 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동차 부품업계의 소프트랜딩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으니 오죽 걱정스러웠을까.

정부는 “부품업체 육성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언급할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더더욱 감이 부족한 행정이다. 행사장 참석자의 상당수가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들임은 이미 파악했을 터이니 말이다.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를 찾아 없애는 것이야 말로 정책당국자의 능력이다.

대의에 묻혀 소의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기차 정책도 노동 정책과 아주 닮았다. 소의를 홀대하는 정책은 또 얼마나 나올 것인지.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