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AI 면접

입력 2018-05-15 18:03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 팀장이 당직을 대신 서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와 철수는 A에 가고 싶은데 영희가 B에 가겠다고 할 때, 영희를 어떻게 설득할까?”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AI) 면접위원이 던진 질문이다. ‘AI 면접’은 올해 채용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AI 면접위원은 초반에 지원자의 성향 파악에 주력한 뒤 상황극 등을 활용한 맞춤형 면접을 이어간다. 대답에 따라 상황 대처 능력이나 직무 역량을 평가한다. 이후 지능지수(IQ) 검사와 비슷한 인지 게임으로 문제 해결 능력을 측정한다.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문제 해결과 관련한 사고력을 평가하는 게 목적이다.

지원자의 심리 상태도 함께 살핀다. 음색과 숨소리는 물론이고 표정, 심장 박동, 혈류량까지 잡아낸다. 면접 결과는 ‘합격·탈락’으로 단정짓지 않고 ‘우수’ ‘추천’ ‘불합격’ 등으로 구분한다. 이를 참고해 합격 여부를 판단하는 최종 단계는 사람이 결정한다. AI 면접위원을 활용하는 국내 기업은 롯데그룹과 SK C&C, JW중외제약, 한미약품 등 6곳이다.

취업준비생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면접위원의 감정이 섞이지 않아 불공정 시비나 채용 비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긍정론, 지원자의 내면 가치와 열정을 알아내기 어렵기에 스펙 위주의 기존 평가와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는 부정론이 교차한다.

일본에서는 지원자가 면접장에 나가지 않고도 응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점심 때나 심야, 집이나 학교 등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원격 면접에 응할 수 있다. AI 면접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회사가 응시자의 동영상을 체크하고 결과를 구인업체에 제출하면 그 업체가 합격 여부를 판단한다.

일본 기업들은 채용 비용을 아끼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며 적극 도입하고 있다. 지원자들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응시할 수 있고, 담당자의 성격이나 기호에 따른 불이익을 피할 수 있어 선호하고 있다. AI 면접을 도입한 회사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일본 소프트뱅크 등 23곳에 이른다.

미국 IBM과 영국 유니레버 등도 AI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 구인·구직 서비스업체는 구직자 1000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기업에 인재를 추천한다. 러시아 IT기업이 개발한 AI 면접위원을 활용하는 회사도 전 세계에 200곳이 넘는다. 중국과 유럽연합 역시 AI 관련 기술을 장기 전략 프로젝트로 선정해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2022년까지 2조원을 투자하고 AI 인재 5000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어제 발표했다. 하지만 2년 전 설립한 AI연구소마저 ‘적폐 논란’으로 방치하며 시간을 허비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나마 채용 시장에서라도 앞서가는 AI 관련 민간 기업이 많아져 다행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