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고통을 회피하려는 본능이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도덕적 이상이죠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빠르게 산업사회로 진입했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와 개인 사이에, 또 개 인들 사이에 이해관계 갈등이 심화됐고, 이를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덕원리가 사회적으로 필요해 졌다. 이에 부응해 소수 특권층에 대항하는 다수 시민계급을 보호하는 공리주의가 등장했다. 당시 공 리주의는 소수 특권층을 공격하면서 민주주의 확장, 형법상의 개혁, 복지 등을 주장했는데, 그 이론적 체계를 확립한 철학자가 벤담이었다.
18세기 발전 시대의 갈등
벤담의 공리주의는 사람에게 실질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공리성(utility)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공리주의라고 하고, 쾌락이 양화돼 계산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양적 쾌락주의라고도 한다. 또한 쾌락의 공리성을 인정하는 점에서는 개인의 쾌락에만 관심을 두었던 고대 쾌락주의와 구별해 사회적 쾌락주의라고 부른다.
벤담의 공리주의 철학을 일이관지(一以貫之), 즉 하나로 꿰뚫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리성의 원리’다. 공리성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벤담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려는 자연적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도덕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은 인류를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군주의 지배 아래 두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지적하는 것도 오로지 이 두 군주에게 달려 있다.” 말하자면 인간은 모두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려는 본능을 지녔다는 것이다. 따라서 벤담은 인간 행위를 밝히는 도덕 법칙이 이런 인간의 본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공리성의 원리’를 제시한다.
어떤 행위가 정당한가
여기서 공리성의 원리란 어떤 행위가 관계 있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더욱 많게 하면 옳은 행위로 인정되고, 그렇지 않으면 그른 행위라는 원리를 말한다. 이 원리로부터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도덕적 이상을 제시한다. 벤담은 공리성의 원리를 유일한 가치 척도이자 가장 이성적인 도구이며 인간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유일한 근거가 된다고 말한다.
이제 벤담에 의하면 진정한 쾌락주의자라면 먼저 공리주의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의 행복과 그가 사회 전체의 행복이 궁극적으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이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이상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공리주의는 공리성 원리를 제시함으로써 이기적 쾌락이 인간의 본성으로 자리 잡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행 가능한 도덕 원리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먼저 가려고 교통 규칙을 함부로 어기는 사람이 왜 옳지 않은지 공리의 원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행위는 당사자 한 사람에게는 이익이 되겠지만, 그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이 입는 손해가 더 크기 때문에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자기 편의대로 휴지를 버리거나 공무원이 사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부정부패 행위 등과 같이 사회 안에서 개인들이 자기의 쾌락만을 추구할 때 서로의 이해가 대립하고 사회는 질서를 잃으며 결국은 아무도 자기의 행복을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벤담이 경계한 ‘쾌락주의의 역설’의 상황이다.
갈등 조정은 법으로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던 벤담은 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공리성을 실현하는 데 법과 제도를 가장 중요한 도구로 삼는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공리가 어긋날 수 있기 때문에 법을 통해 개인의 행위를 규제함으로써 사회의 공리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법과 제도의 역할 중에서도 특히 처벌적 기능에 주목한다. 처벌의 목적 역시 쾌락을 창출하고 고통을 예방하는 것으로 처벌에 의해 가해지는 고통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고통을 감소시키든가 일어날 수 있는 쾌락을 증가시킬 때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원리’에는 ‘최대 다수의 원리’와 ‘최대 행복의 원리’ 간에 상충의 문제가 존재한다. 이 원리는 ‘최대 다수’를 강조하는 것인지 아니면 ‘최대 행복’을 강조하는 것인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전자라면 다수의 행복에 의해 소수가 희생될 수 있으며, 후자라면 소수자를 위해서 다수자의 행복이 희생될 우려가 있다.
◆기억해주세요
벤담의 공리주의 철학을 일이관 지(一以貫之), 즉 하나로 꿰뚫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리성의 원리’다. 공리성의 개념을 설명 하기 위해 벤담은 인간이라면 누 구나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 피하려는 자연적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도덕의 출발점으 로 삼는다.
김홍일 < 서울국제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