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30일 앞인데… '핵폐기 담판'에만 관심 쏠려
정책 등 없는 '3無 선거' 우려
단체장·교육감 등 7명 뽑는데
후보 이름도 모르고 투표할 판
여야, 공약집 발간도 계속 미뤄
유권자들 '깜깜이 투표' 불보듯
新북풍 보수정당에 불리?
한국당, 외교·안보 이슈서 탈피
경제·교육 실정 비판에 집중
[ 박종필 기자 ]
“할리우드 영화와 독립영화가 동시에 개봉하는 상황과 마찬가지다.”
한 정치평론가는 다음달 12일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다음날 지방선거 투표가 실시되는 상황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한반도 안보·외교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신북풍’으로 인해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과 흥행이 그 어느 때보다 저조한 현실을 빗댄 것이다. 거대 이슈에 가려 올해 지방선거는 정당, 후보, 정책이 보이지 않는 ‘3무(無) 선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방권력 바뀌는데 후보 이름도 몰라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장에 들어선 모든 유권자는 투표를 최소 7번 해야 한다. △광역 시·도지사 △교육감 △구·시·군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광역의회 비례대표(정당명에 투표) △기초의원 △기초의회 비례대표(정당명에 투표) 등 7장의 투표용지를 받는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유권자는 투표용지를 한 장 더 받는다. 대통령을 제외한 지방권력과 교육 수장을 통째로 바꾸는 선거인 셈이다.
한꺼번에 여러 명을 뽑다 보니 후보자의 공약은커녕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고 투표장에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광역·기초자치단체장은 그나마 언론 보도를 통해 후보자가 누군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지방의회 선거는 후보자 이름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나 각 가정에 배달되는 공보물 외에는 유권자가 후보자 정보를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정당 공천제가 아닌 교육감 선거는 후보 난립 지역의 경우 ‘깜깜이 선거’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의회 비례대표 의원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의 경우 옥석을 가리기가 더 어렵다.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았음에도 각 당이 공약집 발간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가 초읽기에 다가왔지만 각 당이 지방의회 비례대표, 국회의원 재·보선 후보 등을 다 확정하지 못하는 등 ‘늑장 공천’을 하고 있는 상황도 유권자의 알 권리를 방해하는 요소다.
남북한 정상과 미국 대통령의 움직임에 시선이 꽂히면서 정당 대표의 선거운동도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이 전국을 돌며 지원유세를 펼치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신북풍, ‘보수엔 삭풍, 진보엔 훈풍?’
전국단위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북한 관련 이슈는 통상 보수진영에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남북관계가 나빠지고 북한의 무력도발이 거세질수록 대북 강경노선을 취해온 보수정당 지지율이 올라가는 ‘북풍’이 선거 분위기를 좌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북관계가 ‘훈풍’으로 전환되면서 북한과의 화해 기조를 강조해온 민주당 등 여권에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여권 지지율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1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주간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은 78%였고, 민주당은 53%의 정당지지율을 기록했다.
한국당은 이 같은 환경을 의식해 현 정부 심판전선을 외교·안보에서 경제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 9일 연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평가 토론회’에서도 한국당은 일자리·최저임금 인상 등 경제문제에 화력을 쏟아부었다. 한국당이 지방선거 슬로건에 ‘경제를 통째로 포기하시겠습니까’를 추가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