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세 놔두고 종부세 개편 시사
"시가 반영 못하는 공시가 현실화
공정시장가액비율도 높여야"
전문가 "실패한 정책 또 꺼내나
징벌적 과세로 시장 왜곡되고
납세자 조세 저항 커질 것"
법인세 최저한세율 높이고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 확대도 추진
[ 이태훈 기자 ]
부동산 보유세 개편의 ‘열쇠’를 쥐고 있는 강병구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인하대 경제학부 교수)이 종합부동산세제 개편 가능성을 언급했다.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시장 혼란을 초래한 종부세의 ‘시즌 2’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강 위원장은 11일 서울사회경제연구소가 개최한 ‘공정한 경제로 가는 길’ 심포지엄에서 보유세 개편 방향과 관련, “6월 말께 내놓을 권고안에는 재산세 과세를 강화하는 내용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산세는 집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매기는 보편적 세금인 만큼 손을 대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얘기다. 대신 고가 주택 보유자들을 대상으로 한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를 손보는 식으로 세 부담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임을 시사했다.
재정개혁특위는 보유세 개편 등 중장기 조세개혁 방향을 논의하는 기구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로 지난달 출범했다. 6월 말 세제 개편에 대한 권고안을 내놓으면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세법개정안을 마련해 9월 정기국회에 넘길 예정이다.
◆공시가격 실거래가 반영비율 상향 추진
강 위원장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현재 부동산에 보유세를 부과하는 방식이 공정과세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보유세의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다. 그는 다만 “재산세는 전체 주택 보유자에게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루지 않을 것”이라며 종부세 개편에 무게를 뒀다. 부동산 시장에선 현재 공시가격 9억원(1주택 보유자 기준)인 종부세 부과 기준을 낮추는 식으로 대상자를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진다.
강 위원장은 “공정시장가액비율과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률, 세율 및 과세표준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시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부동산 공시가격과 거래세에 비해 낮은 보유세 비중은 토지와 자본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이란 세금 부과 기준이 되는 과세표준을 정할 때 적용되는 공시가격 비율이다. 이 비율이 70%라면 공시지가가 1억원이라도 과표 계산은 7000만원만 적용한다.
◆“실패한 정책 또 꺼내나”
전문가들은 과거 실패한 정책을 다시 꺼내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종부세 대상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공시가격 기준을 높이면 ‘보유세 폭탄’이 현실화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세무학을 강의하는 한 대학교수는 “집값이 올랐다면 공시가격 상향으로 종부세 대상자들은 자동적으로 세금을 더 낸다”며 “징벌적 과세 성격이 강해 과거 실패한 정책을 다시 꺼내들면 납세자들의 조세 저항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집 한 채를 갖고 마땅한 수입이 없거나 대출 부담이 커 생활 여력이 없는 하우스푸어의 경제적 부담을 키운다는 문제점도 있다”며 “정부의 잇따른 대책으로 부동산 거래가 줄고 시장이 침체될 분위기인데 징벌적 잣대를 다시 들이대면 시장 왜곡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 추진
강 위원장은 과거 논란이 됐던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과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 확대 문제를 다시 꺼냈다. 그는 “조세체계의 공평성과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고소득자, 고액자산가, 대기업에 대한 비과세 감면을 축소해야 한다”며 “올해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이 25%로 인상됐기 때문에 이에 상응해 최저한세율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 위원장은 “다만 기업들의 조세감면 혜택을 줄이는 것은 이번 권고안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안건으로 올라오면 중장기 과제로 다루겠다”고 설명했다.
최저한세율은 납세자가 아무리 많은 공제나 감면을 받더라도 납부해야 하는 최소한의 세금을 정해놓은 것이다. 법인세 최저한세율은 과세표준 100억원 이하는 10%, 100억원 초과~1000억원 이하는 12%, 1000억원 초과는 17%다. 지난해 법인세 인상 시 최저한세율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시민단체와 여권에서 나왔지만 세법 개정안에는 담기지 않았다.
강 위원장은 “개인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 적용 과세 대상 소득을 낮춰 조세 부담의 누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세 최고세율(42%) 과표구간은 5억원 초과, 법인세 최고세율(25%) 과표구간은 3000억원 초과인데 이 기준을 낮춰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개인과 기업을 늘리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기업 비용 부담을 키우는 정책들이 쏟아지는데 법인세율 인상도 모자라 최저한세율까지 올린다면 어쩌자는 것이냐”며 “향후 논의 과정에서 충분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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