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딸이 세상의 모든 공룡을 '티아로 따구루쓰'라고 부르던 시절.
제주도 출장을 가는 김에 하루 더 있으면서 짧은 가족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시작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짧은 비행이라 전혀 걱정 안 했건만 아이는 비행기가 이륙하자 배가 아프다고 칭얼대더니 내리기 직전 구토를 했다.
겨우 수습하고 비행기에서 내려 렌터카를 타고 숙소로 향했는데 짐을 풀고서도 아이는 내내 기운이 없었다.
그 좋아하는 공룡 모형이 전시돼 있는 공원에 가서도 보는 둥 마는 둥 유모차에서 내릴 생각을 않는다.
아이가 컨디션이 안 좋으니 여행의 재미고 뭐고 아이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가장 문제는 식사였다. 아이는 2박 3일 동안 밥 먹기를 거부하고 내내 배가 아프다며 기운 없이 누워만 있었다.
횟집에 가서도 누워 있는 아이 옆에서 회를 먹으니 맛이 느껴질 리 없었다.
"새우 먹을래?"
"아니."
"생선구이 줄까?"
"아니."
"이거 밥 딱 한 숟가락만 먹자. 응?"
(도리도리)
뭐만 먹으면 토하고 배가 아프다고 칭얼칭얼. 아이를 붙잡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두 군데 관광은 해야겠다 싶어 아이를 내내 안고 다니려니 이렇게 세상 힘든 여행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제주도 특성상 식사를 할 때도 관광지를 갈 때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는데 아이가 아픈 게 아니라 내내 멀미를 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이와의 여행 즐거움은 무조건 아이 컨디션에 달려 있다는 걸 절실히 체감했다.
이듬해 여름, 이번엔 5살, 3살 두 딸을 데리고 속초로 향했다. 아이들도 좀 컸겠다 그래도 익숙한 자가용으로 이동하니 좀 괜찮은 여행이 되겠구나 싶었는데 웬걸. 도착하는 날 저녁부터 작은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한다.
여행지라 소아과도 못 찾겠고 해서 일단 약국에서 해열제를 사서 먹였다.
다음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다 구경도 하고 숙소로 왔는데 아이는 밤부터 기침을 하고 열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결국 새벽 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밤을 꼴딱 지샜다.
아이가 아프니 오로지 아이 상태만 지켜보느라 여행은 그냥 만신창이가 됐고 집에 돌아오자 '아 이제야 살겠다'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녀온 건지 극기훈련을 다녀온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렇게 두 번의 여행에서 극한 체험을 하고 돌아와서는 괜히 갔다며 후회도 했지만 다음 해 여름엔 아이들과의 첫 해외여행까지 야심 차게 계획하는 나를 발견했다.
비록 아이 챙기느라 밥이 코에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지언정 훌쩍 어디론가 떠나 '콧바람' 쐬고 싶은 애 엄마의 마음, 그것 때문이다.
평소 가보지 못했던 지방 어딘가에서 아침에 눈 뜨고 처음 들이쉬는 그 낯선 내음은 마치 어제 아이와 아등바등 지내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변신한 것 같은 착각이 들게하고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아기 띠로 아이를 안고, 면 100%옷만 입어야 하는 애엄마일지라도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기대는 미혼 때와 다르지 않은 이유다.
비행기에서는 악을 쓰고 우는 아이 때문에 주위 눈치 봐야 하고, 호텔서 조식 좀 먹을라치면 아이가 떨어뜨린 포크 주우랴, 물컵 주우랴 정신없고, 아이 밥 먹일 땐 온갖 아양을 떨며 씨름해야 하고, 아이 물놀이 지켜보느라 잠시도 눈 못 떼고….
지켜보는 이들은 '그렇게 힘든데 그냥 집에서 쉬지.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애도 엄마도 고생하는 걸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엄마가 됐어도 내가 차린 밥이 아닌 우아하게 식당에서 서빙해주는 밥도 먹고 빳빳하고 정돈된 호텔 이불의 호사를 누려보고도 싶다. 일상을 탈출한 이런 시간을 통해 또 1년간 아이와 씨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거겠지.
아이와의 물놀이 여행 필수품 '방수 기저귀', '이유식', '젖병', '젖병 세정제', '젖병 세척솔', '모래놀이 세트', '비치타월' ,'그늘 만들어주는 튜브', '유아 간식'….
여행을 가는건지 이민을 가는건지 모를 그 시간 또한 곧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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