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블루오션 시프트] ERRC라는 혁신 도구

입력 2018-05-10 17:31
권영설 논설위원


당대에 창업해 한 나라 제일 갑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미국에서 아마존이, 중국에서 알리바바가 그 성공 사례를 보여줬다. 이틀에 한 명씩 억만장자가 새로 나타나는 부(富)의 재편, 기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벤처 창업의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지만, 그만큼 기존 기업들에는 위기다. 세계 최고 회사라고 예외가 아니다. 노키아의 추락 사례는 이미 구문이 됐고 미국을 대표하는 GE와 GM의 부진 소식도 심심찮게 들린다.

부의 재편은 의사결정이 빠른 벤처기업이 거대한 대기업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대기업이 발 빠르게 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100년도 더 된 20세기적 경영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기존 기업으로서 누리는 기득권이 큰 걸림돌이다. 시장 점유율이 높을수록, 돈을 잘 버는 회사일수록 더 그렇다.

업종에서 톱 3 또는 톱 10 정도 되면 약간만 노력해도 일정한 수익이 보장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수많은 사람이 어제와 똑같이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 외부에서 오는 위기의 징조를 느끼기 어렵다.

줄이고 없애고 늘리고 창조하고

그러나 업종 밖에서 강력한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날 때, 그리고 국경의 벽을 넘어 글로벌 강자가 들이닥칠 때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뀐다. 추락한 노키아는 한동안 휴대폰 세계 1위였고, AGFA는 필름 사업에서 최강자였다.

세계 초대형 기업끼리의 대회전이라고 먼 산 불 보듯 해선 절대 안 된다. 어떤 기업이라도 그 회사가 속한 업종은 신규 진입자가 늘어날수록 레드오션화할 수밖에 없다. ‘삐삐’처럼 업종 자체가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도 한다. 업계의 관행을 넘어 새로운 업의 지형을 그려내지 못하면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블루오션전략은 ‘업종의 경계선을 재구축하라’고 강조하는데 그 도구 중 하나가 ERRC다.

ERRC는 eliminate(제거), reduce(감소), raise(증가), create(창조)의 약자다. 우리가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전면적으로 반성하는 방법론이다. 우리가 제공하고 있는 것 중에 고객이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것은 ‘제거’하고, 별 필요 없어진 것은 ‘감소’시킨다. 반대로 고객이 더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는 새로운 기능이나 서비스가 있으면 ‘증가’시킨다. 마지막으로 우리 업종에서 이제까지 한 번도 제공하지 않은 기능이나 서비스를 찾아서 ‘창조’하는 것이다.

"병원엔 왜 발레파킹이 없을까?"

제거하고 감소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증가하고 창조하면 차별화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 블루오션전략은 한마디로 ‘가치는 높이고 비용은 낮추는 활동의 동시 추구’라고 할 수 있는데 ERRC는 이를 실천하는 유용한 도구다. 특히 ‘창조’ 작업을 통해 한 회사의 업의 범위가 크게 넓어지고 때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싱가포르의 대형 병원을 예로 들면 전혀 다른 업종인 호텔을 참조했다. 호텔을 찾는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의 고객 경험을 추적한 결과 병원에는 없는 서비스를 찾아냈다. 바로 발레파킹이다. 병원 업종에 갇혀 있으면 절대 보기 어려운 가치다. 이 병원의 표어는 ‘우리의 경쟁자는 리츠칼튼이다!’로 바뀌었고 업종도 ‘의료여행업’으로 옮겨갔다.

ERRC는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제거되고 감소되는 부분을 담당하는 부서의 반발이 크다. 그리고 모두 증가시키고 창조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투자예산이 크게 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블루오션에서 얘기하는 신시장 말이다.

yskwon@hankyung.com